법정서 웬 춘하추동 공방? '네이버 빛공해' 12년 소송의 쟁점
“춘분·하지·추분·동지가 좋다고 하셨으니 동지까지 측정하면 감정은 12월에 끝날 거고…”(판사)
“소파에 앉아서 TV보는건 누구나 하는 행위이니, (그 상황으로 측정하면)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감정사)
춘하추동. 1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한 법정에선 4절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12년째 계속돼 온 네이버와 인근 아파트 주민들 사이의 빛공해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다.
서울고법 민사8-2부(김봉원‧강성훈‧권순민 부장판사)는 19일 오후 3시 40분 감정기일을 진행했다. 현장 감정을 위한 시기와 방법을 합의하기 위한 절차다. 매일 태양의 높이와 태양빛의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절기마다 측정한 값으로 ‘빛공해’ 피해 여부를 판정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선 빛공해 피해 여부를 측정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상황이 무엇인지를 둔 논의도 신중하게 진행됐다.
거대한 유리 건물에 반사된 빛…'빛공해' 소송 이정표
12년 동안 재판의 쟁점은 어디까지가 ‘참을만한’ 수준인가였다. 파기환송심에서만 석달째 씨름중이다. 이들의 싸움은 2010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네이버 본사 사옥이 지어지며 시작됐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바로 옆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은 건물 전체 외벽이 유리로 덮여 녹색을 띄는 건물이다. 그러나 사옥이 지어진 지 1년 만에 길 건너 아파트 주민 73명이 ‘건물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피해가 크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1년은 국내에선 아직 건물 외벽의 반사광으로 인한 빛공해 분쟁이 많지 않던 때였다. 1심 재판부는 일본·독일의 판례를 들어가며 ‘태양 반사광 차단시설을 설치하고, 원고들에게 위자료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2016년 “자연광과 반사광을 합해 빛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시간이 유의미하게 늘어나지 않았고, 빛이 들어오는 것은 불쾌감의 차이를 유발할 뿐 시각장애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어보인다”며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반사광 차단시설은 방법이 뚜렷하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이유로 커튼이나 블라인드 설치 비용을 네이버가 지원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판단도 내렸다.
기준치 2만 9200배 반사광 ‘번쩍’, 1년 중 7개월간
소송을 제기한 주민들은 이 아파트의 4개 동 중 네이버 건물과 마주보는 쪽에 위치한 A, D 두 동에 산다. 대기업 네이버를 상대로 주민들은 ‘언제, 얼마나’ 반사광이 들어오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를 입증해야 했다. 기초가 되는 반사광 측정 자료는 1심과 2심 모두 동일하게 인용했다. A동에서 측정한 반사광의 밝기는 최소 4500만~최대 3억 9500만cd/㎡(칸델라‧단위면적당 들어오는 빛의 강도), D동에서는 최소 1100만~7억 3000만cd/㎡였다. 건강에 영향이 없다는 기준치(2만 5000cd/㎡)의 440배~2만 9200배에 달하는 수치다. A동은 1년에 약 7개월, 하루에 1~2시간 반사광이 들어오고 D동은 1년 중 9개월간, 매일 1~3시간씩 반사광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평가됐다.
“‘참을 만한 수준’ 다시 판단”
같은 수치를 놓고도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 매 번 판단이 달라진 건 ‘참을 한도’를 다르게 본 탓이다. 1심은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었다’는 원고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고, 2심은 ‘태양을 똑바로 바라볼 때의 1/7 수준의 밝기고, 백열등과도 비슷한 수준’이라며 집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참을만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빛공해’ 인정을 ‘일조권 침해’와 비슷한 기준으로 판단한 2심의 논리에 문제를 제기했다. 들어오던 빛을 차단하는 피해와, 없던 빛을 집 안으로 쏘아보내는 피해를 다르게 봐야한다는 것이다. ‘일조권 침해’의 기준이 ‘해가 가장 긴 동짓날 4시간 이상 햇빛이 가려져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반사광이 들어오는 시간이 그보다 부족하다고 판단한 원심에 대해 대법원은 “사람이 하루종일 직사광선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니 일조권이 일 년 내내 차단된다고 해서 곧바로 건강상 장애를 일으키진 않지만, 반사광은 더 적극적으로 눈에 직접 들어가 시각장애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빛 반사로 인해 안정과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자연스러운 주거생활을 방해받는 점을 짚으며, 건강 피해·독서 등 피해범위를 좁게 본 점도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자연광이 들어오던 시간에 네이버 건물에 가려져 빛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 등을 들며 “자연광과 반사광을 합해서 총 노출 시간은 큰 차이가 없다”고 본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연의 빛과 다르게 인위적으로 지은 건물 외벽에 의한 반사광은 각도가 바뀌며 사람 눈에 직접 들어간다. 눈부심이 발생하거나 자연스럽게 창밖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시각장애를 일으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참을 한도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2심 판결이 있던 2016년과 대법원 판결(2021년) 사이에 ‘빛공해’에 대한 연구가 많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끼친 면이 있다. 네이버 사옥 빛공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직전에는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로 인한 빛공해에 대해 시공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파기환송 이후 진행 중인 2심은 반사광과 시각장애 사이 연관성, 그리고 반사광으로 인해 ‘참을 한도를 넘는 생활방해’가 발생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따져보고 있다. 네이버 측은 토지 용도상 ‘중심상업지역’으로 분류된 만큼 ‘참을 만한 수준’의 빛 반사 기준이 더 높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파이낸스센터·카카오 건물 등을 가상으로 네이버 사옥 위치에 가져다놓은 시뮬레이션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결국 모두 철회했다. 재판부는 3월 21일 춘분 이전에 양측의 논의사항을 더 취합한 뒤 현장 감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정연·오효정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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