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만 보고 "너 결식아동이구나"…'가난' 낙인 찍는 급식카드
채혜선 2023. 1. 20. 05:00
“이거 사도 되나요?”
서울에 사는 고등학교 1학년 A양이 편의점에서 자주 하는 질문이다. 그는 정부 지원을 받는 결식아동이다. 서울시에서 준 아동급식카드(선불카드)로 가맹점 등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지만, 도시락이 아닌 청량음료 등을 살 때는 구매 제한 품목인지를 물어봐야 한다. A양은 “급식카드로 사도 되는지 묻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이어 “그나마 아르바이트생 혼자 계산대에 있는 편의점에선 소심한 성격을 이겨내고 물어볼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8)을 홀로 키우는 40대 이모(여)씨는 지난해 11월 아동급식카드를 발급받았다. 딸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키오스크 이용법을 알려준 것이었다. 19일 기자와 통화에서 엄마는 “아이가 어려서 혹시라도 가게에서 카드 사용이 거절되면 상처가 클 것 같아서 키오스크 위주로 급식카드를 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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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주는 카드가 남긴 수치심
고1 A양이 쓴 카드는 서울의 아동급식 카드인 ‘꿈나무카드’였고 8살 초등학생의 카드는 경기도의 ‘지(G)-드림 카드’였다. 각 지자체가 ‘꿈나무’와 ‘드림’이라는 이름을 새겨 나눠주는 카드는 결식아동들의 끼니를 해결해주긴 했지만, 뜻밖에도 수치심과 절망감을 주고 있었다. 황혜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영등포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는 “결제 전 꿈나무카드 사용자인 걸 밝혀야 해 가게에 사람이 많으면 아이들이 부끄러워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아동급식카드가 아이들에게 가난이라는 낙인을 찍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 결식아동 급식 대상은 유아부터 고교생까지 30만2231명(보건복지부 2021년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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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이용 자체로 외부 시선을 의식하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류호경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의 『아동급식카드를 이용한 식생활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2022)에 따르면 연구에 참여한 대상자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조사에서 “다들 신경 안 써도 혼자 자격지심이 있었다” “가게 주인이 무시할 것 같았다” “급식카드로 결제하면 태도가 달라졌다”고 답했다. 류 교수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카드가 지자체마다 다르고 아이에게 수치심을 준다”고 지적했다.
“급식카드로 결제하면 태도 달라져”
카드 이용 자체로 외부 시선을 의식하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류호경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의 『아동급식카드를 이용한 식생활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2022)에 따르면 연구에 참여한 대상자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조사에서 “다들 신경 안 써도 혼자 자격지심이 있었다” “가게 주인이 무시할 것 같았다” “급식카드로 결제하면 태도가 달라졌다”고 답했다. 류 교수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카드가 지자체마다 다르고 아이에게 수치심을 준다”고 지적했다.
“카드 자체가 낙인”(김영태 한국결식아동청소년지원협회 대표)이라는 현장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마땅한 해법은 없다. 마그네틱 카드의 경우, 카드에 급식카드 명칭이 쓰여있거나 전용 결제기가 있어야 한다. 결제 편의성이 떨어져 사용자가 일반인과 더 구분되는 기분을 주게 된다. 최근엔 일부 지역은 결제 과정에서 결식아동인 게 드러나지 않도록 카드 형식을 IC칩이 내장된 일반카드로 바뀌고 있지만, 과거의 마그네틱 카드를 쓰는 곳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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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자영업자들은 결식아동의 현실을 참다못해 자신들만의 대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급식카드를 내미는 아동에게 음식을 무상 제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영업자 유병학씨는 결식아동에게 돈을 받지 않는 영업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카드 쓰기 싫다며 엉엉 우는 학생을 본 뒤 마음이 흔들렸다”고 했다.
‘낙인’ 지우는 어른들…“눈치 보면 혼난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결식아동의 현실을 참다못해 자신들만의 대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급식카드를 내미는 아동에게 음식을 무상 제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영업자 유병학씨는 결식아동에게 돈을 받지 않는 영업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카드 쓰기 싫다며 엉엉 우는 학생을 본 뒤 마음이 흔들렸다”고 했다.
경남 김해에서 프랜차이즈 초밥 뷔페를 운영하는 김성진(33)씨는 2019년부터 가게 앞에 “결식아동 컬러풀드림카드(아동급식카드) 그냥 안 받으렵니다”라고 적었다. 그 뒤엔 이런 훈계도 적혀 있다. “가게 들어와서 쭈뼛쭈뼛 눈치 보면 혼난다”는 내용이다. 김씨는 “직원 자녀가 형편이 어려워 매번 밥을 굶는 것을 봤다. 아이들이 남과 다른 상황이란 걸 느끼지 않게 하고 싶어서 카드를 쓰지 않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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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차만별 급식카드…세련된 정책 필요
결식아동 급식 지원은 지방 이양사업이어서 지자체의 정책 자체가 들쭉날쭉하다. 결식아동 급식 예산은 수도권의 경우 약 2000억원에 이른다. 서울 621억1400만원, 경기 1180억2696만원, 인천 237억742만7000원 등이다. 전국 지자체에서 수십억~수백억 원이 투입되지만, 복지 전달체계에서 여러 허점이 나타나는 상황이다. 낙인 효과 외에도 1회 사용 한도, 부모 사용 우려, 가맹점 부족 등의 쟁점이 모호하게 얽혀 있다. 한 지자체의 아동복지팀 관계자는 “낙인 효과를 우려해 지역 화폐나 현금·상품권으로 줬더니 아이 대신 부모가 돈을 쓰는 등 여러 부정 발생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관련 공무원은 “카드사와 제휴를 맺으면 가맹점이 크게 늘지만, 지자체가 관리하는 것만큼 결제가 100%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박명숙 상지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이 발달 특성을 고려할 때 카드 사용에 대한 낙인감을 줄일 세련된 정책이 필요하다”라며 “아동복지는 국가 책임이 기본 원칙으로, 지자체별 편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시스템 전환도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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