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주려고" 1천명 몰린 은행…번호표 뽑고 헛웃음 터졌다
3년 만의 ‘대면 설’ 명절을 앞두고 은행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오랜만에 가족모임인 만큼 이왕이면 새 돈으로 세뱃돈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서울 중구의 한 빌딩에서 미화원으로 근무하는 김정숙(69)씨는 지난 17일 인근 우리은행 본점을 찾아 난생처음 신권교환을 했다. 20만원을 5만원권 4장으로 바꾼 김씨는 “지난해 추석 때도 용돈을 못 줬는데 이번 설에는 고등학생 손자, 중학생 손녀에게 새 돈으로 5만원씩 세뱃돈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형편이 어렵고 일도 바빠서 신권을 뽑아본 적이 없는데 올해는 모처럼 명절 기분 내보려고 한다”며 활짝 웃었다.
한국은행은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신권교환 업무를 진행 중이다. 리모델링 중인 한은 본점을 제외한 전국 지점은 물론, 시중은행에서도 신권교환이 가능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설 전 신권교환 업무 첫날인 지난 16일 기준 전국 한은 지점에서 신권을 교환한 건수는 8049건이었다. 지난해 설을 앞둔 신권교환 첫날 건수(4140건)의 약 2배였다.
지난 17일 오후 한은 강남본부도 신권을 바꾸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 남성은 번호표에 찍힌 대기인원 수 45명을 보고 “와, 그럼 이거 얼마나 기다려야 해”라며 헛웃음 터뜨렸다. 이날 150여 만원을 신권으로 바꾼 김용균(76)씨는 “자식들 용돈 줄 때도 쓰고 좋은 일련번호 있으면 내가 보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재현 한은 발권국 화폐수급팀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시간 없이 교환업무를 하고 있는데 서울 강남본부의 경우 첫날 1011명 다녀갔다"며 "지난해 563명의 두 배 가까운 인원"이라고 말했다. 한은 전북본부도 첫날에만 800여 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2021~2011년 설 직전엔 2만여 건에 불과했던 신권교환 건수가 올해는 2019~2020년 수준인 4만여 건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설을 앞두고 신권 수요가 몰린 배경에는 한은의 신권교환 기준이 바뀐 영향도 있다. 한은은 상시적으로 신권교환 업무를 해오다 지난해 3월부터 설ㆍ추석 등 특수한 기간을 제외하곤 심각하게 훼손된 화폐만 신권으로 바꿔주고 있다. 신권을 지나치게 선호하는 분위기 탓에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판단해서다. 지난 17일 한국은행 강남본부를 찾은 양모(49)씨는 “사실 지폐 일련번호 모으는 게 취미”라며 “명절에만 신권교환이 된다고 해서 1인당 교환 한도를 다 채워간다”고 말했다.
신권 발행 자체가 축소되면서 시중은행에 배포되는 신권 수량도 줄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번 설을 앞두고는 지난해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고객이 창구를 찾았다”며 “예년보다 일찍 준비한 신권이 다 소진됐다”고 말했다. 정복용 한국은행 발권기획팀장은 “한국은행은 지속적으로 신권 선호 완화 캠페인을 벌여왔는데 이번이 신권교환 기준이 바뀐 후 처음 맞는 설 명절이다 보니 신권 수요가 더 몰린 것 같다”며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일상회복이 이뤄진 영향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신권수요와 코로나19 방역수칙 완화 기조를 감안해 20~21일 오전10시~오후5시 영동고속도로 여주휴게소 강릉방향에서 이동점포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자동화기기(ATM) 등을 갖춘 특수차량 형식의 이동점포로 신권교환과 입출금거래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김경희·임성빈·서지원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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