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평범한 명절이 그리운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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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을 적었다가 지웠습니다.
으레 주고받는 인사가 하필 '안녕하세요'라는 게 얄궂습니다.
대체 어떻게 인사를 건네야 할지 모르겠어서 노트북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평범한 명절의 날들도 사무치게 그리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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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을 적었다가 지웠습니다. 으레 주고받는 인사가 하필 ‘안녕하세요’라는 게 얄궂습니다. 안녕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서둘러 인사말을 지웁니다. 다시 말을 골라봅니다. ‘간밤 무사하셨느냐’고 물으려다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오늘의 무사함을 확인해야 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 건지, 혹시라도 너무 깊게 생각하게 될까 봐서요.
대체 어떻게 인사를 건네야 할지 모르겠어서 노트북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식사시간이 다가올 무렵에서야 인사말이 떠올랐습니다. ‘식사는 하고 지내시는지요.’ 제가 배가 고프니 다른 사람도 배가 고플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지요. 지난해 10월 29일에 많은 것이 멈춰 있는 분들에게 조심스레 안부를 묻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하고 지내시는지요.
명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하룻밤 사이에 잃고 맞이하는 첫 명절이 얼마나 황망할지 떠올려 봅니다. 같이 떡국을 먹으며 덕담을 나누고 사소하게 말다툼도 하다가 금세 웃음을 주고받던 이와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가혹하게 느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너무 힘들지만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미약하나마 글줄에 담아봅니다.
제 얘기를 조금 나눌까 해요. 몇 년 전 설 명절을 앞두고 저는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병실에서 보내고 있었거든요. 병원에서는 명절과는 다른 종류의 분주함이 있었어요. 기름 냄새 대신 소독약 냄새가 넘치는 공간에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대신 위태로운 적막함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그렇게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일상의 감각이 너무나 간절해집니다. 평범한 명절의 날들도 사무치게 그리웠지요.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기름 냄새 너무 지겹지 않으냐며 이제 명절 상차림은 그만하자고 같이 툴툴대던 시절이 무척이나 그리웠습니다. 병실에서 함께 걸어 나가서 집으로 가고 싶다고, 집에서 다 같이 둘러앉아 그 기름 냄새를 다시 맡고 싶다고, 지금 당장 그러고 싶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 무렵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도 평범한 명절의 시간이 몹시도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전을 부쳐도 괜찮다고, 떡국에 김치 하나 올려놓고 먹어도 행복할 것 같다고,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렇게 여러분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애통해하는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밝혀진 것 없이 참사의 진상이 묻히면 어쩌나. 무엇보다 진상 규명이 걱정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뭇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영영 멀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에게 주어진 글 한 편의 공간에 작게나마 위로의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구석구석에서, 저처럼 여러분의 애통함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조롱 섞인 악성 댓글, 통곡을 향한 손가락질, 절박한 외침을 외면하는 싸늘한 시선들을 곱씹으며 지독한 절망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하룻밤 사이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여러분에게 무엇이 위안이 될까 싶습니다만, 너무 외로워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평범한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번 설에 따뜻한 떡국 한 그릇 든든하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아픔을 기억하는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긴 인사를 마칩니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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