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입을 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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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운세에 1월 내내 돈 드는 일이 많을 거라는 말이 있었다.
이 말대로 연말에 손에 화상 입은 걸 시작으로 치과에 갈 일까지 기어코 생기고야 말았다.
시시때때로 스케일링도 받고 검진도 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시간적 여유도 필요하다.
한 시간 가까이 입을 크게 벌리고 고무를 꽉 깨무는 걸 반복하면서 세상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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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운세에 1월 내내 돈 드는 일이 많을 거라는 말이 있었다. 이 말대로 연말에 손에 화상 입은 걸 시작으로 치과에 갈 일까지 기어코 생기고야 말았다. 떡을 먹다가 신경치료를 한 치아의 크라운이 빠진 것이었다. 오래된 보철을 벗겨내고 보니 안쪽이 잔뜩 썩어 있었다. 검게 변한 부위의 충치 치료는 물론이고 새로 치아 색깔이 나는 소재로 뚜껑도 덮어줘야 한다. 수십만원이 그렇게 결제되고야 말았다.
문득 “가난은 치아에 새겨진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치아 치료에 드는 돈이 만만치 않고, 제때 잡아주지 않으면 정말 대형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시때때로 스케일링도 받고 검진도 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시간적 여유도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정상적 치아 개수는 28개라 한다. 이가 빠지면 식사를 하는 데도 불편이 따른다. 몸 한구석도 필요치 않은 곳이 없다는 듯 그렇게 치아는 모든 나의 생명 활동에 얽혀 있다.
오른쪽 어금니에 임시 치아를 심은 나는 오직 입안의 절반만으로 설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차라리 잘됐다. 크라운이 빠지지 않았다면 이 안쪽이 그리 상했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그러다 온전히 썩어 이가 부러지면 더 큰 공사를 해야 한다. 한 시간 가까이 입을 크게 벌리고 고무를 꽉 깨무는 걸 반복하면서 세상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벌려야 가난과 차별과 소외가 보인다. 뚜껑을 벗겨봐야 좀먹던 부패함이 보인다.
구정이 지나 우리만의 새해가 열리면 약자의 이야기가 더 많이 밖으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안 벌리던 입을 크게 열다 보면 턱이 덜덜 떨릴 수도 있고 머리가 지끈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밥 한술 못 넘길 정도로 악화되기 전에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그리고 서로 계속 들여다보고 점검해줘야 한다. 새해 떡국 한 그릇에 한 살을 더 얹는 명절날, 우리 함께 더 많이 떠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는 건 어떨까.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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