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추가 성장, ‘경제외적 기반’ 없이는 어렵다

2023. 1. 2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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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력 10위 국가로 부상한 지난 70여년의 한국 경제는 가히 기적을 이루었다고 할만하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 역시 지금 짙게 깔린 것이 사실이다. 향후 한국 경제가 지속적 성장을 이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정책의 개선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뿐 아니라 경제외적 기반을 크게 개선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어떤 나라든 그 나라의 경제는 경제적 기반과 경제외적 기반이라는 두 기둥 위에서 성장, 발전해나간다. 경제적 기반은 인적·물적 자원, 생산시설, 산업기술, 도로항만 등 인프라, 금융시스템, 재정세제, 경제정책의 틀을 포함한다. 경제외적 기반이란 그 사회의 지식수준, 의사결정 구조의 합리성, 문화와 기풍, 시민의식, 국가 거버넌스, 사회적 신뢰, 지도층의 능력과 도덕성, 사법제도의 공정성, 정치, 언론문화 등을 포괄한다.

「 소득 수준은 선진국 문턱에 도달
사회 전반의 합리성은 한참 처져
경제외적 기반 취약성이 큰 문제
포용과 협치 통해서만 개선 가능

1960년대까지 한국경제는 세계 최빈국에 속했으나 당시 한국의 경제적 기반이나 경제외적 기반은 우리보다 소득이 높았던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이웃 동남아 국가들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한국은 적어도 1500년에 걸친 중앙집권적 행정제도를 갖추어온 나라며, 높은 학문적 전통을 이어온 나라다. 많은 신생 독립국들이 가지고 있었던 인종간·종교간 갈등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인적자원의 질이 높았고 토지개혁 등으로 소득과 부의 분배도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려운 균등한 수준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꿰뚫어 보고 1960년대 중반 미국의 경제학자 아델만과 모리스 교수는 그들의 저서 『사회, 정치, 경제발전: 수리적 접근 (Society, Politics, and Economic Development: A Quantitative Approach)』(1967년)에서 한국의 인적, 제도적 기반, 소득분배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적어도 당시 수준의 다섯 배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1960년대 들어 경제정책 틀이 바른 방향을 잡고, 제도 혁신과 함께 생산시설 및 인프라 투자를 크게 늘리면서 한국 경제는 그동안 벌어져 있던 소득 수준과 경제 및 경제외적 기반의 갭을 메우며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소득 수준의 빠른 증가와 함께 경제적 기반의 취약성이 제약으로 작용할 때에는 경제개혁 조치로 추가적 소득향상을 위한 기반을 넓혀 주었다. 아마도 1980년대 후반 3저 현상으로 인해 초호황을 누린 후 한국의 소득수준과 경제적 기반의 갭이 거의 메워졌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OECD 가입과 세계화·개방화를 추진하면서 한국의 경제적 기반이 이를 받쳐줄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게 되어 결국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다시 광범위한 경제개혁 조치와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 기업 부채축소, 지배구조개선 등이 이루어져 경제적 기반이 강화되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추가적 소득성장을 지지해 주었다고 보인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경제적 기반이나 경제외적 기반이 우리가 누리는 소득과 소비 수준을 지탱해 나가기도 버거워 보인다. 경제적 기반에서는 출산율 감소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뿐 아니라 과도하게 상승한 부동산가격과 가계부채, 한계기업들의 적체된 구조조정, 노동부문의 경직성,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과 크게 악화한 부와 소득의 분배, 생산성 정체 등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과 추가적 성장을 제한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외환위기 때와 같은 외부로부터의 개혁 압력도 약화하였고, 국내 정치는 진영 간 대결에 갇혀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경제개혁 조치들을 적시에 이뤄내지 못하고 문제를 누적·이연시켜왔다.

향후 우리 경제의 선진화 과정에서 무엇보다 큰 제약 요인은 경제외적 기반의 취약성이다. 소득 수준은 선진국 문턱에 와있으나 사회 전반의 지식수준과 합리성, 제도와 조직 운영의 효율성, 인사보상 시스템, 사회질서, 정치 행태 등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 사법 시스템과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 타인에 대한 신뢰와 협력과 같은 ‘사회적 자본’ 수준은 개도국에 가깝다.

오늘날과 같이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세계화와 인터넷 혁명으로 기술전파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 신흥국들의 추격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한국 경제가 지금의 위상에서 더 후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아가 여기서 한 단계라도 더 올라서기 위해서는, 이제 단순히 경제 정책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대혁신이 일어나야 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기저에 깔린 보상·유인·징벌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고, 국가지배구조를 개편해나가야 한다. 그러한 대혁신의 동력은 정치적 세(勢)와 다수 여론의 지지 없이는 생기기 어렵다.

경제외적 기반의 취약성은 하루아침에 개선되길 기대할 수 없다. 장기간에 걸친 일관된 추진이 이뤄져야 비로소 변화를 시동할 수 있다. 대한민국 1세대와 2세대는 국가가 요구하는 당시 시대적 소명을 나름대로 해내었다. 이제 횃불은 3세대로 넘어왔다. 이를 해내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포용과 협치의 정치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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