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수의 카운터어택] 두 줄 부고의 행간
‘홍인자씨 별세, 김소영(전 서울시의원·전 체조 국가대표)씨 모친상=11일, 서울성모장례식장(...)’.
지난주 신문에서 우연히 만난 부고 하나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딱 두 줄인데, 생각이 그 행간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전 체조 국가대표 김소영. 기자가 되기 훨씬 전부터 들어 알고는 있던 이름이다. 하지만 스포츠 기자, 더구나 체조 담당 기자를 할 때도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가 한때 ‘체조 요정’으로 불렸고,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됐고, 불굴의 의지로 새로운 길을 걸어갔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개막(9월 20일)이 한 달도 남지 않은 그해 8월 28일. 체조 국가대표이자 메달 유망주인 청주여고 1학년 김소영은 서울 올림픽공원 체육관에서 훈련 중이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종합대회.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쏠린 기대는 무거운 압박감이었다. 김소영은 이단평행봉 훈련 도중 떨어져 목뼈를 심하게 다쳤다. 그렇게 수술대에 오른 김소영은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1988년 서울올림픽이 다 끝난 그해 12월 16일에야 재활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그사이 전해진 소식은 대통령이, 총리가, 장관이 ‘격려금을 전달하고 위로했다’는 정도였다.
김소영에게 다시 세상 시선이 쏠린 건 그로부터 5년 뒤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비교적 이른 51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딸의 사고로 인해 아버지는 크게 상심했다고 한다. 굳이 듣지 않아도 짐작할 만했다. 김소영의 새로운 꿈이 된 미국 유학을 위해 아버지가 노력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한 종교단체 후원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유학한 그는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다. 이후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살았다. 그 ‘승리’ 뒤에는 아버지 별세 뒤로 지난한 세월을 보냈을 어머니가 있었을 거다. 지난주 이젠 중년인 딸을 두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김소영의 ‘승리’에는 대개 주변의 ‘선의’가 함께했다. 많은 운동선수가 ‘국가’의 부름을 받아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국가’의 이름을 걸고 뛰다가 부상하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는다. 전장·병영에서 또는 사건·사고 현장에서 부상하거나 생명을 잃는 군인·경찰 등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얼마 전까지 선수와 그 가족은 국가의 ‘책임’ 대신 주변의 ‘선의’에 기대어 스스로 앞길을 헤쳐가야 했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으로 2015년부터 부상 또는 사망한 국가대표 체육유공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진 건 다행이었다. 김소영의 경우 사고 29년 만의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분야가 ‘보훈’이다. 심지어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한다는 소식도 있다. 부상하거나 사망한 체육유공자와 그 가족(유족)도 ‘보훈’처럼 챙길 건 없는지 더 챙겨보길 바란다.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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