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만 9개…생존율 98%, 8000명 살린 '간이식의 신'
“아침 7시 한국의 서울아산병원입니다. 한국의 한 간이식팀이 독자적인 수술 방법으로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지난해 이 병원은 320례(건) 이식 수술을 했는데, 한 해 세계 최대 기록을 세웠습니다. (중략) 수술 성공률이 96%에 달합니다. 세계 최고입니다.”
15년 전인 2008년 12월 미국 방송사 ABC의 한 기자가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앞에서 이렇게 리포트를 했다. 그 기자는 이 병원의 간이식센터 의료진을 “한국의 드림팀”이라고 불렀고, “세계 최고”라고 평가했다.
그 ‘칼잡이’가 이승규(74)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다. 2008년 여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간이식학회에서 외국 의사들은 “생체 간이식의 메카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했다”고 평가했다. 2008년 이후 15년 동안 간이식 세계 최고의 자리는 더 굳건해졌다. 이승규 교수의 회고.
“1997년 2월 성인 생체 간이식을 시작했는데, 환자가 빠르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간암 절제수술 환자도 마찬가지고요. 수술당 평균 10~15시간 걸렸습니다. 환자는 밀려드는데 의료진은 부족하고, 그래서 수술의 많은 부분을 혼자 했지요. 30분 쪽잠만 자고 일어나도 거뜬했습니다. 수술 참관용 받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벽에 등을 대고 잤지요.”
아산병원 간이식센터가 세계 간이식의 메카가 되면서 의료진이 230여 명으로 늘었다. 의사도 전임교수·임상교수·전임의(펠로)·전공의 등 23명이다.
간이식을 받으러 오는 환자는 중증 중의 중증 간경화·간부전·간암 환자다. 의식불명이거나 자기 호흡이 약해 인공호흡을 하거나, 소변이 막혀 몸이 퉁퉁 부었거나, 심장이 약해 체외순환기구(에크모)를 달고 온다. 이 교수는 “바람 앞의 촛불 같다”고 표현한다. 이 교수팀은 생존 가능성이 4~5%만 있어도 이식에 도전한다.
이승규는 복서다. 수술장이 사각의 링이다. 상대 주변을 빙빙 도는 아웃복서가 아니라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인파이터다. 끝을 보지 않으면 링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뇌사자의 간이나 기증자의 간을 떼고, 말기 환자의 간을 제거하고 거기에 이식한다. 간정맥, 문맥, 담도 순으로 무수한 혈관을 연결한다. 말기 환자의 간을 제거하려면 들러붙은 혈관, 막힌 혈관, 기형 혈관 등의 숲을 14~15㎝ 파고들어야 한다. 펑펑 쏟아지는 피가 시야를 가린다. 수백 병의 혈액을 쏟아넣는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야간에 수술실을 가장 많이 쓰는 데가 간이식팀이다. 뇌사자가 밤에 주로 발생해 야간이나 주말 수술이 많다. 한 해 450~500건의 이식 수술을 하는데, 15%가 응급수술이다. 230여 명의 의료진은 한 시간 거리 이내에 산다. 아니 살아야 한다.
이승규 팀은 ‘세계 최초’ 제조기다. 99년 세계 최초로 변형우엽 간이식에 성공했다. 세계 표준 기법이 됐다. 2000년 두 사람의 간을 조금씩 떼어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2대 1 이식을 성공한 것도 세계 최초다. 지금까지 600여 명의 말기 환자가 이 기법으로 새 생명을 얻었다.
92년 뇌사자, 94년 생체 간이식을 시작으로 2020년 7월 세계 최다인 7000건 간이식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9월 8000건(생체 6658건, 뇌사자 1342건)을 돌파했다. 세계기록을 9개 세웠고, 의학 교과서를 새로 썼다. 세계가 이 교수팀에 놀라는 이유가 또 있다. 수술 후 1년 생존율은 98%, 3년 90%, 10년 89%다. 미국은 각각 91%, 84%, 76%다. 이 교수팀을 능가할 데가 없다.
그의 연구실에는 철제 몽골 기마병 조각상이 있다. 몽골 환자가 준 선물이다. 이 교수는 “이식 전문 의사는 몽골 기병과 다름없다. 아산병원은 돌격대다. 파이팅 정신이 중요하다. 후계자에게 이걸 물려줄 것”이라고 말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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