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헐값인데 고깃값은 여전…한우 요지경
전라북도 군산에서 한우 160마리를 사육하는 정윤섭(65)씨는 소 한 마리를 팔 때마다 손해가 크다. 통상 30개월까지 키워야 소를 팔 수 있다. 키우는 데 1000만원가량이 들지만, 팔고 나서 손에 쥐는 돈은 600만원 수준이다. 정씨는 “사룟값은 2년 전과 비교하면 40~50% 오르는 등 비용은 안 오른 게 없는데, 한우 가격은 내려갔다. 고생해 키워봐야 빚만 쌓이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우 가격이 폭락하면서 축산 농가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한국한우협회와 축산 농가 등에 따르면 경상북도 예천군과 충청북도 음성군의 소를 키우던 농민 2명이 이달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들은 솟값이 계속해서 곤두박질치면서 최근 부채가 불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전날 소 한 마리(600㎏ 기준)는 평균 513만2000원에 거래됐다. 같은 날짜를 기준으로 지난해에는 661만7000원, 2021년엔 709만8000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가축 시장 경매에서 낙찰이 이뤄진 가격을 집계한 것이다. 한우 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하면 22.4%, 2년 전에 비해선 26.7% 하락했다.
반면 생산비는 급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사료비 부담이 커진 탓이다. 축사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기도 많이 들어가는데 공공요금 인상도 부담이다. 실제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발표하는 세계곡물가격지수는 지난해 평균 154.7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0년엔 103.1, 2021년엔 131.2였다.
정씨가 최근 소 한 마리를 30개월까지 사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000만원이 넘는다. 인건비는 아예 제외하고서다. 먼저, 6~7개월 송아지를 들여와 키워야 하는데 2년 전 420만원가량이 들었다. 이 송아지를 30개월까지 24개월간 키우는데 들어가는 사룟값만 마리당 497만원이다. 전기료, 수도요금, 톱밥 깔기(1년에 4번) 등에 수십만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각종 방역·치료비, 농기계 임차료 등까지 부담해야 한다.
사실 솟값 하락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지난해 1월 열린 축산전망 대회에서 전문가는 한우의 공급과잉이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한우 사육두수는 354만4000마리에 달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4년 이후 350만 마리를 넘긴 건 지난해 2분기가 처음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경기둔화로 소비심리가 악화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한우협회 관계자는 “사육두수가 많긴 하지만 공급 측면에서 이렇게까지 가격이 내려갈 상황은 아니다”라며 “소비자가가 여전히 높게 유지되면서 한우를 찾는 소비자가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소비 진작과 유통구조 개선 노력과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로선 의문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한우는 이전보다 싸지 않아서다. 한우 농가는 적자인데 정작 소비자는 체감하지 못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지난 18일 1등급 안심의 100g 당 평균 소비자가격은 1만2821원이다. 1년 전(1만3878원)보다 1057원(7.6%) 내리는 데 그쳤다. 1+등급 안심은 오히려 1년 전보다 더 비싸졌다.
전문가는 유통시스템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농가에서 우시장에 소를 팔면 도매상이 이를 산 뒤 도축해 부위별로 소매점에 판매한다. 농가가 판매하는 가격은 내려갔지만, 이후 과정에서 도축비·인건비·물류비 등은 모두 20% 넘게 올랐다. 게다가 소비자가 선호하는 부위가 등심·안심 등 극히 일부로 한정되다 보니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주 단위로 한우 판매가격을 조정하고 있지만, 사전 기획한 물량이 있기 때문에 판매가에 즉각적으로 반영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일단 도매가보다 소비자 가격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은 만큼 대규모 할인을 통해 소비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한우 수출도 장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진호 기자, 백일현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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