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文정부 블랙리스트 의혹' 백운규·유영민·조명균 기소
공모 전 정치권 '낙하산' 내정…면접 예상질문·모범답안 제공
블랙리스트 의혹 4년 만에 수사 마무리…'늑장수사' 비판도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에게 사직을 강요했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의 실체를 검찰이 재차 확인하고 당시 장관과 청와대 인사참모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서현욱 부장검사)는 19일 백운규(58)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조명균(65) 전 통일부 장관, 유영민(71)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현옥(66) 전 인사수석비서관, 김봉준(55) 전 인사비서관 등 5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산자부·과기부·통일부 산하 공공기관 기관장 총 19명에게 사직서를 강요했다고 판단했다.
백 전 장관과 조 전 수석은 산자부 산하 11개 기관장에게 부당하게 사표를 제출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2017년 9월 서부·남동·중부·남부발전 등 '발전 4사' 기관장을 서울 시내 호텔과 식당으로 한 명씩 불러내 "이번 주까지 사직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백 전 장관은 산하 민간단체인 한국판유리산업협회·한국태양광산업협회·한국윤활유공업협회 상근부회장들에게 사표를 제출받고 그 자리에 문 전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 인사를 임명한 혐의도 받는다. 이 과정은 김 전 비서관이 주도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유 전 장관은 2017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당시 과기부 이진규 1차관, 임대식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을 통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 산하기관 7곳 기관장에게 사직을 요구한 혐의를 받는다. 조 전 인사수석도 같은 혐의가 적용됐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경우 3년 전 실시한 종합감사를 또다시 진행해 사임을 거듭 압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밖에 기초과학연구원, 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우체국물류지원단, 한국우편산업진흥원 기관장들에게도 부당하게 사표를 제출받은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조 전 장관은 2017년 7월 천해성 당시 통일부 차관 등을 통해 임기를 약 1년 남긴 손광주 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의 사퇴를 종용한 혐의를 받는다. 손 전 이사장이 이를 거부하자 "조용히 사직해달라"며 직접 사표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치권 인사를 앉히기 위해 면접 등에서 특혜를 제공하거나 이미 시행된 직원 인사를 취소하는 등의 무리수를 둔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검찰에 따르면 백 전 장관과 조 전 수석은 2018년 3∼7월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한국석유공사 등 공공기관 3곳 임원으로 정치권 인사 5명을 내정한 뒤 직무수행계획서를 대신 써주고 면접 예상 질문과 모범 답안을 알려줬다. 또 인사수석실이 원하는 후임 기관장 임명 전이라는 이유로 한전KPS가 2017년 12월 시행한 직원 86명의 인사를 사흘 후 번복·취소하게 했다. 당시 취소된 인사는 이듬해 5월 후임 기관장이 임명되고 나서야 시행됐다.
백 전 장관은 한국디자인진흥원의 후임 기관장으로 내정한 인물이 공모 마감일까지 지원하지 못하자 산자부 공무원을 시켜 임원추천위원회가 추가 모집을 진행하고 내정자에게 최고 점수를 주기도 했다.
검찰은 장관 지시에 따라 수동적·소극적으로 관여한 각 부처 차관들은 기소유예 처분했다.
김우호 전 인사비서관과 박상혁 전 행정관 역시 불기소했다. 각 부처 실무자들도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의 법리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 유사 사건의 판례, 사건 관련자들의 지위와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날 기소된 피고인들 재판은 주거지 등 관할에 따라 모두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백 전 장관 등의 기소는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된 지 약 4년 만이다.
이번 수사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2019년 1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인호(60) 전 산업부 제1차관 등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산업부 '윗선'이 한국전력 자회사 사장 4명을 압박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표를 내게 했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러한 사퇴 압박이 국책연구기관장과 공공기관에 대해서도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같은 해 3월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등 11명을 추가로 고발했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산업부와 산하 자회사 8곳을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정권 교체를 기다리다가 수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검찰은 지난해 4월 보도자료를 내고 "대선 결과에 따른 '정치보복 수사', '코드 맞추기 수사'라는 등 논란이 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2022년 1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선고돼 공공기관장 사퇴 종용과 인사권 남용에 대한 법리가 정리돼 본격적으로 수사했다"고 말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김은경(67)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56)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2017∼2018년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받고 청와대나 환경부가 점찍은 인물들을 후임으로 앉힌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신 전 비서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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