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정책이 낳은 초고위험 경제를 보라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임상훈 옮김
위즈덤하우스, 616쪽, 3만3000원
세계 경제의 최대 관심은 금리다. 돈에 대한 이자인 금리는 투자와 저축, 소비 등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올해 한국 경제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고금리 추세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가 관건이라고 한다. 2022년 물가가 뛰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저금리 시대였다. 중앙은행들은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고금리 정책을 사용한다. 금리는 정부가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영국 금융사가 에드워드 챈슬러의 신작 ‘금리의 역습’은 금리가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에 대한 포괄적 설명을 제공하면서 경제 위기의 치료책으로 여겨지는 초저금리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챈슬러는 저금리 시대의 신용 거품과 경제 위기를 경고한 전작 ‘금융투기의 역사’로 명성을 얻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금리의 역사와 금리를 둘러싼 학자들의 논쟁을 정리한다. 이자, 특히 고리대금에 대한 비판은 유서가 깊다. 하지만 저자는 이자를 “돈의 시간 가치” “가치 평가의 핵심” “절제에 대한 보상” “효율성을 추진하는 힘” 등으로 바라보는 관점들을 소개하며 “이자의 출현이 금융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혁신”이라고 한 경제사가 괴츠만의 주장을 지지한다.
이어진 2·3부에서는 현대의 금리 정책을 조명하며 저금리 문제를 깊게 들여다본다. 금융위기와 부동산 거품, 국가부채는 물론이고 불평등, 금융화, 세계화, 포퓰리즘 등도 저금리의 여파로 해석한다.
책에 따르면 스타트업 바람, 집값 폭등, 주식 열풍, 가상화폐 인기 등 근래의 경제 현상은 정부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로 만들어진 ‘이지 머니’가 초래한 현상들이다. “영국에서는 주택 위기를 주택 건설 부족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300년 역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기로 한 잉글랜드 은행의 결정은 주택 구매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지 머니가 부동산 다음으로 향한 곳은 테크기업이었다. 구체적으로 우버, 위워크 등을 거론하며 이익도 못 내는 스타트업 주가가 왜 그렇게 높은지 알려준다. “사람들이 유니콘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은 그들이 금리를 먹고 산다는 것이다. 그들은 저금리를 좋아한다.” 인수합병 붐, 사모펀드 바람, 엄청난 주가 배당 등도 저금리가 만들어낸 문제들이다.
저금리가 불평등을 악화시켰다는 분석은 그동안의 불평등 담론에서 볼 수 없었던 관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금융위기에 대응한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거대한 유동성은 부자들의 자산 증식 레버리지로 활용됐다. 반면 가장 큰 자산이 집이었던 미국 중산층 가구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평균 44%의 재산을 잃었다. 주식은 대체로 부자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미국인 대부분은 주식 시장 회복에 따른 결실을 받지 못했다. 저금리는 선진국에서 중산층 감소, 주택 위기, 출산율 하락, 기대수명 감소 등을 초래했다.
저자는 “금융위기로 촉발된 파격적인 통화 정책이 불평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면서 “초저금리 시대에도 가난한 이들은 이지 머니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챈슬러는 ‘21세기 자본’에 나오는 피케티의 유명한 불평등 공식 ‘r>g’를 뒤집어 ‘r
책은 저금리가 기업 투자나 소비 촉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달콤한 저금리 속에서 가계, 기업, 정부의 부채가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부채가 크게 늘면서 국가 재정은 금리에 매우 취약해졌다. 영국에서는 금리가 1%만 올라도 영국 정부의 이자 비용이 GDP 대비 약 0.8% 더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됐다.
산업의 금융화 원인으로 저금리를 지목한 것도 날카롭다. 챈슬러는 초저금리 시대가 이어지면서 금융이 산업의 자리를 대체했다고 분석한다. 이어 미국 대표 기업 GE의 추락을 묘사하면서 금융화된 기업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초저금리 문제는 그동안 깊게 논의되지 못했다. 양적완화와 금리 인하는 흔히 약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여겨져 왔다. 초저금리를 넘어 제로 금리나 마이너스 금리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인식도 퍼져나가고 있다. 저자는 이런 경향에 제동을 걸고자 한다. 그는 “금리가 마이너스의 영토로 깊이 빠져드는 세계에서는 금융 체제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한다”면서 “그야말로 세계가 뒤집힐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국가가 금리에 점점 더 깊게 개입하는 것은 시장 기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보편 가격을 조정 내지 억압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국가 통제 경제나 21세기 계획경제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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