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고 아름다운 ‘보라 월드’… 그 원형을 만난다

김남중 2023. 1. 1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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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47)는 지난해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퍼플레인이 기획한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첫 책 '아무도 모를 것이다'는 2010년대 '거울'에 게재된 정보라의 단편들을 선별해서 묶은 소설집이다.

정보라는 이번 소설집에 대해 "오래전에 썼던 이야기들"이라며 몇 마디 설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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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보라 지음
퍼플레인, 428쪽, 1만7000원
정보라 작가가 2010년대에 쓴 환상문학 계열의 단편들을 묶은 소설집이 출간됐다. 정보라는 올해 새 장편소설도 발표할 예정이다. 혜영 제공


정보라(47)는 지난해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그전까지는 ‘정도경’이라는 필명으로 20년 넘게 장르소설을 써온 무명작가였다. 그의 소설이 주로 발표된 곳은 환상문학 웹진 ‘거울’이었다. 그는 ‘거울’의 독자게시판에 작품을 올리며 문학 이력을 쌓아왔다.

‘거울’ 운영진이었던 최지혜 작가는 정보라에 대해 “한 달에 한 편씩 글을 올렸다”며 “굉장히 성실하고 많이 쓰고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였다. 자기가 겪고 느끼고 좋아하는 이야기라면 뭐든지 다 소설로 써내는 능력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소설가 정세랑도 ‘거울’에 올라오는 정보라의 글을 좋아했다고 한다. 정세랑은 “얼마나 많은 새벽, 정보라의 단편을 보며 위로받았는지 모른다”면서 특히 그의 비정함에 애정을 느낀다고 얘기했다. “용서와 화합이라는 뜨뜻미지근한 결말로 내몰려는 압박에, 정보라는 타협하지 않는다. 웃음기 없이 비정하게, 추악하고 끔찍한 세계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마주 본 다음 본 대로만 쓴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퍼플레인이 기획한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첫 책 ‘아무도 모를 것이다’는 2010년대 ‘거울’에 게재된 정보라의 단편들을 선별해서 묶은 소설집이다. 정보라의 초기작들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보라 월드’의 원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라의 소설들은 환상문학으로 분류되는데, 수록된 10편 모두 비현실적이고 설화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나무’에서는 땅에 떨어진 친구가 나무로 변하고, ‘머리카락’에서는 머리카락이 세상을 감싸고 인간들은 고립된다. ‘비오는 날’은 유일한 미발표작인데 “나는 그녀의 왼쪽 신발에 산다”는 화자가 어떤 존재인지 끝내 알 수 없다. ‘금’은 “이것은 미래에 다녀와서 신세를 망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로 시작된다.

‘완전한 행복’과 ‘Neesun sapra(네순 사프라)’는 러시아 역사를 배경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라는 소설집 제목은 ‘Neesun sapra’의 한국어 번역이다. ‘Neesun sapra’는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대사이기도 한데, 정신병원에 갇힌 천재 작가와 이 작가를 돌보는 간호사의 기이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면’은 환영에 중독된 남자의 이야기. 안톤 허의 번역으로 지난해 미국 ‘Valancourt Book of World Horror Vol.2’에 수록됐다.

정보라는 이번 소설집에 대해 “오래전에 썼던 이야기들”이라며 몇 마디 설명을 붙였다. 그는 먼저 “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한다”면서 “이야기의 효용 자체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세계를 상상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옛날얘기나 동화에서는 비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나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동화나 민담 장르에서는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많이 일어난다”며 “그래서 내가 옛날얘기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정보라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현실적 정합성을 정교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환상적이고 비합리적인 전개를 별다른 설명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구사한다.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확실하게 깨달았다” “어떻게 해서 아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알았다” 이런 정도로 처리하고 넘어간다.

대신 그가 공들여 묘사하는 것은 눈을 부릅뜨고 맞서는 정신이나 에너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비극적이면서 아름답고, 낯설지만 매혹적이다. 또 비정하면서도 기이한 방식으로 위로를 전해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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