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건강 지키는 '그린 위 허준'…"피치마크 복구는 예의"
그린에 숨은 과학…"잔디 상처 셀프 보수 필요"
"실력 키우고 매너 갖추면 멋진 골프"
"4인 전원 티잉 구역 진입 지양해야"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수준"
"인간에게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듯, 골프장 코스도 품질관리를 위해 영양제나 농약을 최대한 적게 쓰면서 예방에 집중해야 합니다."
심규열 한국잔디연구소 소장은 전국 골프장의 잔디를 관리하고 문제를 진단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잔디 의사’다. 잔디와 토양, 수목, 화훼 등 골프장을 조성하는 자연물의 분야별 전문가들을 이끌며 병충해 대응이나 환경 관리, 영양 공급 등 생장에 필요한 일을 지원한다. 그는 19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골퍼들이 그린이나 티잉 구역, 페어웨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다른 이용객을 위해 지켜야할 매너를 숙지한다면 보다 좋은 여건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몇 가지를 당부했다.
우선 그린이다. 골프장 잔디 가운데 가장 예민하고 관리가 까다로운 구역이다. 심 소장은 "그린은 배수가 핵심"이라고 했다. 시간당 최대 400㎜ 강수량에도 견딜 수 있도록 물이 쉽게 빠질 수 있게 설계한다. 잔디 아래 쪽에 지름 1㎜ 이하의 균일한 알갱이로 된 모래층을 30㎝ 깊이로 쌓고, 그 아래 입자가 좀 더 굵은 왕사를 10㎝ 정도 깐다. 바닥은 자갈로 메워 배수로와 닿게 한다.
심 소장은 스펀지를 예로 들며 "주전자로 물을 부었을 때 스펀지가 일정량까지는 머금고 있다가 포화 상태가 되면 측면과 하단으로 순식간에 물을 뱉는다"며 "그린에서도 어느 정도 수분은 모래와 자갈이 흡수하고 있다가 비가 쏟아져 포화되면 중력에 의해 지하 배수층으로 한꺼번에 물을 쏟아낸다"고 설명했다. 평소에는 잔디가 마르지 않도록 적당량의 물을 저장하고 있다가 장마철이나 폭우에 담수량을 조절하는 원리다.
그린은 공이 빠르고 일정하게 구를 수 있도록 잔디 길이를 3~4㎜로 깎는다. 잔디가 무르기 때문에 샷이 날아가 피치 마크가 생기기 쉽다. 심 소장은 "퍼팅 정확도를 높이고 다음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로 골퍼들이 스스로 피치 마크를 복구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퍼터키퍼를 꼭 소지하고 상처가 난 잔디를 살짝 떼어 낸 뒤 전후좌우 잔디를 모아 덮어주면 상처난 부분을 재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페어웨이에 쓰는 잔디는 품종에 따라 자라는 습성이 다르다. 대표적인 수입종인 벤트그라스는 뿌리가 토양에 깊이 박히지 않고 생장점이 줄기에 있어 땅위로 엎드리듯 자란다. 심 소장은 "벤트그라스는 뿌리가 얕고 잎이 부드러워 디봇(클럽 헤드가 땅을 파내며 떨어져 나가는 잔디 조각)이 손바닥만하게 크게 나지만 떨어진 부위를 다시 덮으면 표면의 생장점과 붙어 잔디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반면 켄터키 블루그라스나 한국형 잔디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줄기가 땅속을 파고 들어가는 형태로 자란다. 새싹도 깊숙한 곳에서 움튼다. 상대적으로 디봇에 견고하기 때문에 샷을 했을 때 잔디가 파이는 정도가 덜하다. 대신 상처난 부위를 덮어도 생장점이 맞닿지 않아 잔디가 재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심 소장은 "다음 골퍼를 위해서는 상처난 부분을 메우고 이동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심 소장은 또 티잉 구역에 동반자들이 모두 올라가 티샷을 지켜보는 일도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잔디 마모를 촉진해 좋은 샷을 구사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벙커샷을 마친 뒤 모래를 정리하는 습관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실력을 키우고 이런 몇 가지 매너까지 갖춘다면 진짜 멋진 골프를 즐길 수 있다"고 웃음을 보였다.
심 소장은 한국골프장경영협회가 1989년 부설연구기관으로 세운 잔디연구소 창립 멤버다. 농학박사로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현 국립농업과학원)에서 작물에 발생하는 병해충을 연구하다가 자리를 옮겼다. 초창기 잔디연구소는 삼성그룹이 지은 안양컨트리클럽(CC)에서 태동했다. 골프장에 애착이 컸던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매달 일본에서 골프장 코스관리 전문가를 초빙했는데, 그때 연구소 직원들도 자문을 구하고 기술을 정립했다. 연구소는 현재 골프장경영협회 회원사 203곳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골프 코스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연간 250~300회가량 출장을 간다.
미국과 일본 등 코스관리 선진국으로 꼽히는 나라에 뒤지지 않을만큼 노하우를 갖췄다는 것이 심 소장의 평가다. 그는 "지난해 골프장 내장객 수는 18홀을 기준으로 미국이 3만7000명, 일본 3만1000명인데 우리는 9만1000명으로 3배가량 많았다"면서 "코스 품질은 이들 나라와 비슷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우리의 관리능력이 훨씬 뛰어난 것"이라고 자부했다.
골프코스 관리 우수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1990년부터 운영한 그린키퍼 학교도 연구소의 주요 업무다. 1년 과정으로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은 이들이 각 골프장에서 일할 수 있다. 32년간 500여명을 배출한 사관학교다. 심 소장은 골프장의 수요가 많아 취업률이 높지만 현장 업무가 고되고 주말이나 휴가철 등에 업무 빈도가 높다는 인식 때문에 젊은 세대 관심이 부족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코스관리는 전문직이고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다"며 "쾌적한 자연 환경에서 근무하며 골프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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