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등급 교대 1차 합격이 '교권 추락' 탓? [아이들은 나의 스승]
[서부원 기자]
▲ 교실 속 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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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지만, 대학과 학과의 경쟁률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3요소는 우리나라의 유난스러운 학벌 서열과 졸업 후 취업률, 그리고 직업적 안정성, 이 세 가지다. 합격 가능 점수와 등급도 이에 연동되고, 각 요소끼리도 정비례한다. 대체로 학벌 서열이 앞설수록 취업률도 높고 취업한 분야의 직업적 안정성도 높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것이 아이들의 진로 선택에 절대적이고 유일한 기준이라는 점이다. 교육과정에 흥미와 적성을 조사하는 커리큘럼이 배정돼 있고, 교사들은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아이들의 특기가 잘 발휘될 수 있도록 안내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취업만 보장된다면 대학이든 학과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온존한 학벌 구조에 기대어 가만히 뒷짐 지고 있어도 지원자가 몰려드는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을 제외하고, 전국의 모든 대학이 내걸고 있는 홍보 문구는 한결같다. 취업률이 높다는 것. 산출하는 기준이 대학마다 달라서 믿거나 말거나 식의 통계일 뿐이지만, 아무튼 취업률을 내세우지 않으면 아이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SKY 위의 '의치한약'
그런데, 언제부턴가 취업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직업적 안정성이다. 아이들도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 대부분 비정규직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정규직에 견줘 급여 수준과 처우가 매우 열악하다는 걸 알기에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아이들이 줄을 섰다. 흥미와 적성을 따지는 건 사치라는 거다.
이 또한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지만, 남 부러울 서울대 공대나 취업이 보장된 명문대 계약학과(취업연계형 학과)에 합격하고도 등록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따져볼 것도 없이, 그들 대부분이 서울과 지방 가리지 않고 '의치한약'(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요즘 들어 학교명과는 상관없이 '의치한약'을 한데 묶어 학벌 서열상 'SKY' 위에 따로 배치하는 추세다.
한때 서울대 부럽지 않았던 포항공대(POSTECH)와 한국과학기술대학(KAIST)도 한물간 지 이미 오래다. 광주의 GIST나 울산의 UNIST 역시 옛 명성을 잃었다. 해당 대학 재학생들이 다시 수능을 치러 '의치한약'으로 갈아타는 현실은 이젠 뉴스조차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 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국립 대학들조차 아이들의 외면 속에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물론, 취업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그들 대학 졸업생이라면 대개 공기업과 굴지의 대기업에서 적잖은 임금과 사회적 처우를 받는 어엿한 정규직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런데도 죄다 오매불망 '의치한약'만 바라보는 이유는 직업적 안정성에서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의사, 약사 면허의 위력과 조기 퇴직의 공포가 맞물려 있는 셈이다.
"자기 분야에서 특출나지 않으면 정년은커녕 쉰 살까지도 버티기 힘든 과학자와 일단 면허만 따면 별도의 정년 없이 평생 넉넉한 삶이 보장되는 의사와 약사, 둘 중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일까요? 굳이 물어보나 마나입니다."
서울대 공대 합격증을 주저 없이 버리고 지방 사립대 의대를 선택한 한 제자의 말이 서글프다. 지금 진로나 진학 담당 교사 중에 그에게 의대 대신 서울대 공대가 낫다고 추천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그가 어릴 적 과학 영재였다는 사실도, 흥미 적성 검사에서 과학 연구 분야에 재능이 있다는 분석도 그저 심심풀이 참고 자료일 뿐이다.
그 아이의 '행복한 고민'을 부러워하는 한 학부모의 말은 학교의 진로 교육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또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SKY'라는 명문대의 간판도, 잘 나가는 공기업과 대기업의 사원증도 잠깐의 행복일 뿐 평생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했다. 거친 비유일지언정 곁에서 듣던 모든 이가 수긍했다.
▲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3 학생들이 지난 2022년 9월 31일 오전 광주 동구 전남여자고등학교에서 모의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모의평가는 수능 출제기관인 평가원이 본 수능 이전에 실시하는 마지막 모의고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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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직장에 다녔다고 한들 어쨌든 60살이 되기 전에 퇴직하게 되고, 100세 시대에 나머지 절반의 삶은 연금만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늦은 나이에 낳은 자녀가 취업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자영업이든 재취업이든 '제2의 인생'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날까 봐 60살은커녕 50살만 돼도 노심초사하는 게 현실이다.
이태 전 정부조차 무릎 꿇린 의사들의 위세까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터다. 당시 정부는 의사의 부족과 열악한 지방 의료 환경에 대한 대책으로 의대 정원의 확대와 공공 의대 설립을 추진했다. 이를 반대하던 대한의사협회 소속 전문의와 전공의들이 집단 파업으로 맞섰고, 갈등이 장기화하며 환자들의 피해가 속출하자 정부가 백기 투항하며 사태가 일단락됐다.
그동안 보수 언론은 모든 파업에 전가의 보도처럼 불법 딱지를 붙였지만,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는 되레 그들 편에 서서 정부를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언론은 노동조합의 파업에는 엄단을 부르대지만, 의사들 앞에선 기꺼이 '푸들'을 자임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아이들에게 의사는 대통령도 부럽잖은 '슈퍼 갑'이다.
취업이 유일한 목표가 된 현실
'의치한약'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는 와중에, 한때 등급과 점수에서 그들에 버금갔던 교대와 사대의 몰락이 눈에 띈다. 최근 수도권의 한 교대에서 수능의 6개 전 영역에서 최하위 4%인 9등급인 지원자가 1차 합격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해당 지원자가 최종 합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그만큼 교대 지원자가 적다는 방증이다.
과거 교대와 사대의 경쟁률이 높았던 건, 중견 기업 수준의 보수와 정년이 보장된다는 직업적 안정성 때문이다. 특히 교대는 사대에 견줘 임용시험 합격률이 높아 더욱 선호됐다. 상대적으로 교사가 되기도 쉽고, 처우도 괜찮은 데다 정년까지 보장되니 지원자가 몰려드는 건 불문가지다. 드물게는 의대 대신 교대를 선택한 여학생의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지금은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임용시험이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것에 비유되고, 되레 교대와 사대 출신은 일반 기업 취업에 불리하다는 이야기마저 나돈다. 딱 하나 좋은 점이 있다면, 졸업장과 함께 주어지는 교원자격증으로 기간제 교사로 일할 수 있다는 것 정도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처럼 아이들의 장래 희망 직업에서도 교사는 해마다 한두 계단씩 내려오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상위 세 손가락 안에는 무조건 들어있었는데 격세지감마저 든다. 지금은 의사, 약사, 변호사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유튜버와 패션 디자이너, 방송 작가, 요리사 등에도 밀려나는 형국이다.
한 아이는 의사나 약사에 견줘 교사의 선호도가 급격하게 낮아진 것을 두고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의대나 약대는 합격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도 진학하고 나면 꽃길이지만, 교대는 합격하기도 어려운 데다 임용시험 통과는 더더욱 힘들어서라는 거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재수, 삼수해서라도 '의치한약'에 도전하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대다수라고 했다.
그는 교권의 추락으로 교대 경쟁률이 낮아졌다는 일부 언론의 분석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적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크게 줄어든 건 오로지 교사 채용 규모가 나날이 축소되고 있어서라고 단언했다. 취업이 공부의 유일한 목표가 된 현실에서 교권의 추락과 업무의 과중 등을 따질 겨를이 없다는 이야기다.
25년의 교직 생활 동안 요즘처럼 아이들이 꿈꾸는 진로가 획일화된 때가 있었나 싶다. 문과 적성이면 죄다 변호사가 되겠다며 로스쿨 진학을 꿈꾸고, 이과 적성이면 하나같이 의사와 약사가 되겠다고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는 시대가 됐다. 그럴수록 변호사와 의사, 약사의 기세는 등등해지고, 나머지 수많은 직업의 종사자들은 상대적 '루저'로 움츠러들게 된다.
20여 년 전쯤 장래 희망 직업에 '시민단체 활동가'라고 적은 아이가 있었다. 그때 조언이랍시고, 그에게 '힘들고 배고픈 직업'이라는 말을 건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내게 면박하듯 이렇게 대꾸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돈까지 많이 벌길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 아닐까요?" 내게 스승이 된 그와의 만남 이후 더는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겠다는 아이는 없었다.
흔히 '선생만 있고, 스승은 없는' 시대라고들 한다. 교사 욕하는 게 온 국민의 '레저 스포츠'가 된 현실을 꼬집은 표현이다. 교사가 학벌 서열과 등급, 점수에 따른 '직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황에서, 교직이 성직이기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일 수밖에 없다. 교사가 되겠다는 어릴 적 꿈조차 '먹고사니즘' 앞에 망상으로 치부되는 현실 앞에 교사로서 마음이 참 헛헛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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