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교육청 '블랙리스트' 파문에도 강 건너 불구경인 도의회
[충북인뉴스 최현주]
새삼스럽게 지방의회(원) 역할과 권한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요즘 충북도의원들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고 있자니, '도의회·도의원의 역할이 무엇이었더라' 깜박깜박 잊어버리곤 한다.
현재 충북은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김상열 원장이 폭로한 '블랙리스트'로 큰 충격에 빠져 있다. 김 원장 주장의 요지는 충북교육청 정책기획과 장학사들이 단재연수원에서 이뤄지는 강좌의 주제와 강좌명, 강사명을 특정했고, 그들을 배제하라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단재연수원 직원에게 USB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6일 도교육청이 자처한 기자회견에서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다. 한백순 정책기획과장은 모니터단이라고 부르는 각 학교 교사들이 '혁신', '행복', '평화통일'을 기준으로 300여 개 강좌와 강사를 배제할 것을 단재연수원에 주문했고, 이는 윤건영 교육감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기자들에게는 붉은색·노란색 음영이 들어간 한글문서를 보여주며 붉은색은 강의를 하지 말라는 표시라고 친절하게 설명도 했다.
천범산 부교육감은 '협의과정의 하나일 뿐'이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이를 협의과정이라고 받아들이는 단재연수원 직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가 봐도 특정인과 특정강좌를 배제하라는 '블랙리스트'가 맞다.
블랙리스트가 폭로된 지 2주일이 지난 현재 충북교육청과 도교육청을 감시하는 충북도의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충북교육청은 누가 조사할 것인지를 두고 연일 논쟁을 이어갔고, 충북도의회는 어쩌면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을 수도 있는 감사결과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지켜만 보겠다고 한다. 교육위원회 의원들이 도교육청에 자료를 요청했다고는 했지만 무슨 자료를 요청했는지,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하물며 도의원들과 김상열 원장이 직접 대면해 도민들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음에도 유상용 의원은 도민들이 전혀 궁금해 하지도 않는, 뜬끔 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김현문 교육위원회 위원장은 블랙리스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커녕 김 원장에게 교육청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일을 왜 SNS에 올려 일을 확대시켰냐는 듯 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급기야 교육위 의원들은 김 원장이 '164만 도민의 대표'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며, 공개적인 사과와 도교육청의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도교육청을 감시하는 기관으로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할 도의원들이 오히려 내부고발자를 압박하고 핵심과 상관없는 일을 확대시켜 본질을 흐리고 있다. 블랙리스트라는 있을 수 없는 중대사안은 제쳐두고 자신들의 체면유지에만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 과연 충북도의회가 충북교육청을 감시하는 도민의 대표 기관이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자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를 들 수 있다. 당시 국정농단 사태의 실마리는 내부고발자들로부터 나왔다. 내부고발자의 주장이 100% 맞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도교육청 감사관 또는 충북도의회가 할 일은 문서가 만들어진 경위, 즉 부하직원들의 자발적인 과잉 충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조직적인 지시에 의해 이뤄진 것인지, 또 문서가 실제 연수와 강의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윤건영 교육감도 이를 알고 있었는지 등을 밝히는 것이다.
현재 충북도의회 교육위 의원들은 당초부터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교육위도 아닌 건설환경소방위원회 박진희 의원이 19일 5분 발언을 통해 충북교육청 블랙리스트 특조위 구성과 행정사무조사를 제안했지만 이 또한 요원해 보인다.
박 의원의 5분 발언 이후에도 김현문 위원장은 "일단은 교육청 감사결과를 지켜볼 것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도의원들에게 제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랬을 때 164만 충북도민의 대표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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