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화장품 매장 3년간 100곳 사라져…‘로드숍 부활’은 아직
6년째 서울 중구 명동에서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는 임윤택(39)씨는 최근 ‘명동이 살아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웃을 수가 없다. 임씨는 “가게에 들어오는 고객은 코로나19 이전의 70% 정도 회복했지만 매출은 절반도 안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예전에 장사가 잘될 때는 하루에 영수증이 1000개 넘게 발행됐지만, 코로나19 이후 최악일 때는 하루 종일 손님이 아무도 안 들어온 적도 있었다”며 “이제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화장품 가게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때 ‘K-뷰티 메카’였던 서울 명동에서 코로나19 이후 화장품 매장 100곳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품 로드숍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성장과 코로나19 영향으로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온라인 시장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뒤처지고, 화장품을 쓸어 담던 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져서다.
19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명동 화장품 판매점 수는 28개에 그쳤다.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12월 128개에서 2020년 12월 77개, 2021년 12월 25개로 급감했다. 최근 명동에 외국인 관광객이 돌아오며 일부 신규 매장이 문을 열고 있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단일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화장품 로드숍은 2010년대 초반 명동을 ‘쇼핑 성지’로 만든 주역이었다. 이니스프리·미샤·토니모리·스킨푸드와 같은 간판들이 주요 거리의 상가 1층을 차지하며 중국인 관광객을 맞았다. 주로 ‘가성비’ 제품을 내세우며 20~30대 고객을 공략했다.
그러나 로드숍은 2017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 이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주 고객이던 중국인 관광객 발길이 뚝 끊겼다. 코로나19로 그나마 오던 관광객과 유동인구가 줄면서 명동 등 주요 상권에서 로드숍 폐점이 줄을 이었다. 온라인으로 화장품을 사는 사람이 늘었고, 오프라인에서는 올리브영 같은 헬스&뷰티(H&B) 스토어가 대세가 됐다.
‘1세대 화장품 로드숍’ 이니스프리의 영업이익은 2019년 626억원에서 2020년 70억원으로 급락한 뒤 2021년엔 영업적자 1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에는 영업이익 83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로드숍 회복이 아닌 온라인 매출 확대 영향이 컸다.
지난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화장품 수요가 늘면서 로드숍도 부활을 꿈꾸고 있지만 본사와 가맹점주들은 동상이몽이다. 본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보다 온라인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명동에서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연말 특수가 사라진 뒤 이달 들어 다시 방문객이 줄어 더욱 힘든 상황”이라며 “본사에서도 가맹점에 판촉 행사와 같은 지원을 줄이고 있으니 누가 새로 매장을 열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될 것이란 기대감에도 로드숍은 당분간 회복이 어려울 전망이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전부터 온라인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며 로드숍 위기는 시작됐으나 중국 관광객 감소 때문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며 “뷰티 수요가 늘더라도 로드숍 회복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화장품 로드숍이 위기를 돌파하려면 중국 관광객의 ‘싹쓸이’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다양한 뷰티 산업과 연계하는 등 자체적인 경쟁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선을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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