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발언 빌미 삼아 선 넘은 이란…정부, 주한이란대사 초치

박현주 2023. 1. 1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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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 발언에 대해 나흘째 항의를 지속하던 이란이 사안과 무관한 한국의 북핵 대응 기조까지 문제 삼았다. 정부는 이란의 반응이 사실상 "선을 넘었다"고 보고 이란 대사를 초치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들과 악수하는 모습. 대통령실.


이란대사 초치 '맞대응'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19일 오전 사이드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초치했다. 조 차관은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UAE에서 임무 수행 중인 우리 장병들에 대한 격려 차원의 말씀이었고, 한ㆍ이란 관계 등 이란의 국제 관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고 이날 외교부가 전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UAE 순방 중 현지에 파병된 아크부대 장병들을 만나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라고 말했다.

조 차관은 또 "이란의 핵확산금지조약(NPT) 관련 문제 제기는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날로 고조되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 억제의 실효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라고 샤베스타리 대사에게 지적했다.

앞서 18일(현지시간) 레자 나자피 이란 외무부 법무·국제기구 담당 차관은 윤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에 대해 항의하겠다며 윤강현 주이란한국대사를 초치했다. 이 자리에서 나자피 차관은 윤 대통령이 지난 11일 외교·국방 업무보고에서 "더 (북핵) 문제가 심각해져서 대한민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발언한 것까지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핵 무기 제조는 NPT에 위배되는 일로 한국에 해명을 요구한다"고 했다.

18일(현지시간) 이란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레자 나자피 법무?외교차관이 윤강현 주이란한국대사를 초치했다고 밝혔다. 해당 성명에서 이란은 윤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에 대해 "오지랖(meddlesome)"이라며 한국 측 설명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란 외무부 홈페이지 캡처.


이와 관련, 북핵 문제 심화 시 옵션으로 '핵 무장'을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을 'NPT 위배'로 전제하고 이에 대한 해명까지 요구한 건 이란이 할 얘기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과거 북한과 함께 불량 국가(rogue state)로 찍혔던 데다 NPT 탈퇴까지 위협하던 이란이 한국을 향해 NPT 기준을 내미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로 유엔·미국 등 제재를 받고 있으며 북한과도 오랜 우방국으로 미사일 기술을 공유해왔다. 최근 이란 핵합의(JCPOA) 복원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이란의 핵 개발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나흘째 '선 넘은' 항의


지난 15일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이란은 거의 매일 항의를 이어갔다.

발언 이튿날인 16일 외무부 대변인이 나서서 "오지랖(meddlesome)이자 주변국 관계를 전혀 모르는 발언"이라고 비판한 뒤, 18일에는 주한이란대사관을 통해 "윤 대통령의 발언을 예의주시하며 한국의 설명을 기다린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전날인 17일 "외교 채널을 통해 이란에 한국 입장을 설명했고 이란도 이해했다"는 외교부의 설명을 부정한 셈이었다.

이어 같은 날 주이란한국대사를 초치해 한국의 북핵 대응 기조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동결 자금 문제까지 재차 꺼내 들었다.

이와 관련 외교가에선 "이란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고 현 국면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은 2018년 미국의 대 이란 제재 복원으로 한국 시중 은행에 묶여버린 동결 자금 문제와 2020년 청해부대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등 한국에 그간 '쌓인 감정'이 있다.

또 이란은 지난해 9월 시작한 '히잡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지난해 12월 미국 주도로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에서 이란을 내쫓는 표결에 찬성표를 던진 것도 이란으로선 불편한 대목일 수 있다.
지난해 10월 이란 반정부 시위대가 도로에 모여 정부를 규탄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국제적 고립 와중 '발끈'


이란이 윤 대통령 발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란은 걸프 지역 국가 대다수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꾸준히 주장하는 것도 궁지에 몰린 국내 정치와 외교·경제적 측면의 국제적 고립을 의식한 행보란 지적도 나온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이 이란을 적대시하는 입장을 밝힌 것도 아닌데 이란이 며칠째 과도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며 "이런 행태가 반복되면 한국 내에서도 '이란이 한국을 자유 진영의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그간 쌓인 감정을 풀고 있다'는 반발 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21년 1월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선박을 나포해 95일간 억류했을 때도 이란 정부가 유사한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을 오염시켜 붙잡았다"면서도 "동결 자금 문제를 해결하라"고 압박하거나 "한국이 미국의 명령을 받고 이란이 음식과 약을 살 돈을 빼앗았다"고 주장하는 식이었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윤 대통령 발언이) 논란의 원인을 제공한 건 아쉽지만, 이란의 강경한 태도에 발목 붙잡힐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UAE의 양자 관계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한 발언이 곡해가 됐고 이란을 자극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차분하고 일관되게 우리 입장을 설명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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