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한국대표단으로 참석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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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정부는 집권과정에서 신구파가 분열하는 등 약체정권으로 출범했다.
차라리 학자풍의 원만하고 둥근 성격을 소유하고 있었던 장면 박사는 한국적 정치풍토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는 1961년 3월 28일부터 4월 29일까지 제15차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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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기자]
장면 정부는 집권과정에서 신구파가 분열하는 등 약체정권으로 출범했다. 그러다보니 역사적인 혁명과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였다. 거국내각을 바라는 국민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서민호의 시각으로는 장총리나 윤대통령은 무능하고 박력이 없는 분들이었다.
장면 총리나 윤보선 대통령으로 말하자면 나의 선배요 존경하는 인격자이기는 하나, 한마디로 말해서 무능하고 박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뚜렷한 주관이 있지 않아서 도저히 그 당시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과단성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학자풍의 원만하고 둥근 성격을 소유하고 있었던 장면 박사는 한국적 정치풍토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주석 2)
그는 윤형남 의원 등과 자유당 치하에서 나라에 많은 과오를 저지른 사람들을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공민권을 제한하는 법률안을 제안하였다. 이승만 정부가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을 처벌하는 반민특위를 짓밟으면서 남긴 폐악을 지켜봐왔기에 이승만 정권 12년 동안 반민주·부패·부정선거 원흉들을 처벌하고 일정기간 공민권을 제한하는 법률안이다.
그는 1961년 3월 28일부터 4월 29일까지 제15차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했다. 한국은 정식 회원국이 아니어서 옵서버 자격이었다. 1927년 귀국한 지 34년만의 미국행이다.
"내가 유엔에서 통렬히 깨달은 것은 한국의 통일을 유엔의 힘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연구 노력하는 자체의식을 보여줌으로써 유엔에서도 어떤 새로운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유엔에 참석하기 이전 그러니까 형무소에 있을 때부터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다각적인 면에서 연구 분석했고 좀 더 빠른 통일에의 길을 모색하려고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주석 3)
유엔총회를 다녀온 그는 5월 5일부터 9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유엔을 다녀와서>란 제목으로 성과와 소감을 썼다. 주요 내용을 뽑았다.
내가 만나본 중립국가 대표들은 대다수가 한국문제는 먼저 당사자인 남북한 대표끼리 담판을 시작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쌍방이 만족할만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때 비로소 유엔에 돌고나와 조정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유엔의 승인을 얻은 합법적인 정부임에는 틀림없으나 북한에 공산정권이 존재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어떻게 무시하느냐는 말투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유엔은 이미 해결의 장소가 아닌데 덮어놓고 송두리째 들고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투였다.
그들은 한국이 북한과 한 자리에 앉기를 꺼려하고 무작정 유엔 일변도, 미국 일변도로 나오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16개 참전국들의 태도에도 느끼는 점이 많았다. 그들은 한국이 주장해온 종래의 통일방안에는 흥미를 잃고 외면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은 상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결하려면 모르되 적어도 상대로 하려면 유엔의 공기를 알아야 하며 안다면 종래의 방식이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멀고 그러나 성스러운 목표 앞에 서 있다. 그 도정이 형극의 길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이 운동은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종적으로 몇 단계엔 가나 나누어질 우리들의 준비과정에는 횡적으로도 또한 몇 분야로 나누어가는 것이 효과적이리라. (주석 4)
그의 안목은 국내정치에서 통일문제로 넓어지고, 이후 정치인 중에서는 드물게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고 전문성을 갖추게 되었다.
주석
2> <이 정권과의 투쟁(49)>.
3> 앞과 같음.
4> <동아일보>, 1961년 5월 5일~13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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