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꺾이지 않는 마음, 슬램덩크의 흥행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 2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26년 만에 선보인 ‘슬램덩크’는 이로서 새해 첫 1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로 기록되었다. 전국 재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꿈과 열정, 멈추지 않는 도전을 그린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만화 작가다.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일본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해, 세계 시장에 1억 7000만 부를 판매했으며 국내에서는 1992년 도서출판 대원이 ‘주간 소년 챔프’를 통해 연재해 약 1500만 부를 판매했다. 당시 ‘슬램덩크’는 만화 인기에 힘입어 방송용 애니메이션과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고 만화라는 범주에서 아시아 대중문화에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최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을 견인한 주역들은 3040 세대다. 당시 10대, 20대였던 독자들이 영화의 주된 관객인 것이다. 30대가 45%로 가장 많았고 40대는 35%로 그 뒤를 따랐다. 성별로는 남성 관객이 전체 75%로 과반을 넘겼다. 영화 인기에 힘입어 원작 만화도 서점가 판매 순위를 역주행하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과거 열혈 팬들이 다시 ‘슬램덩크’에 열광하면서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이 재흥행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먼저 3040 관객층의 향수를 자극한다. ‘88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낸 1990년대 초반 대한민국은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시기였다. 10대 청소년들에게 즐길만한 문화가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었다. ‘슬램덩크’는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인 ‘꺾이지 않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감수성이 충만했던 청소년들은 ‘슬램덩크’를 읽으며 꿈과 희망을 키웠고 열정과 의지를 배웠다. 지금은 비록 중년이 되어 지친 현실과 마주하고 하지만 당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꿈 많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관객들의 마음을 영화가 자극한 것이다.
현지화 전략도 주효했다. 국내에 일본 문화가 그대로 들어오기 어려웠던 1990년에는 일본 지명과 이름을 그대로 쓸 수가 없었다. ‘슬램덩크’는 한국 현지화에 맞게 캐릭터들의 이름을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 등으로 사용해야만 했다. 현지화는 인물들의 성격과 찰떡같이 맞아 떨어지면서 많은 팬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현지화 전략은 그대로 고수했다. 더욱이 9일부터는 당시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30~40대의 요구에 따라 한국어 더빙판 상영관이 크게 늘고 있다. 현지화 전략은 흥행 돌풍을 일으킨 요인 중의 하나다.
팬덤이 곧 대중성과 흥행을 보장한다. 관객이 많이 드는 작품을 보면 대부분 팬심이 작용한다. 코로나 이후 극장가에서 100만 관객을 돌파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저예산 독립영화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일본 로맨스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10~20대 여성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으며 90만 관객을 모았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역시 30~40대 남성을 중심으로 팬덤을 형성했다. 두 작품이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열혈 팬들의 팬덤이 관객들을 불러 모은 결과다. 이제는 대중적인 영화가 흥행하는 것이 아니라 팬덤을 가진 작품이 대중성을 담보 받고 흥행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과거보다 더 잘살게 됐지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삶은 더 각박해졌다. 젊은 시절에 꾸었던 꿈과 이상이 멀어져 가면서 꿈이 없는 세대, 꿈을 잃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 시절 지녔던 ‘꺾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아쉬움은 우리 모두에게 아직도 남아있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은 우리를 꿈을 키웠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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