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고통, 인간의 자리
[이하정 기자]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 흑인 여성으로서 첫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1931~2019)의 말이다. 편집자로 일하던 그녀가 수많은 책을 읽고 만들면서 정작 자신이 보고 싶었던 책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후 그녀는 흑인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룬 <가장 푸른 눈>, <술라>, <솔로몬의 노래> 등의 소설을 발표한다. 1988년에 <빌러비드>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1992년 <재즈>를 발표한 뒤 다음 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흑인 여성 작가'라는 한계를 오히려 작품의 정체성으로 승화시켜 인종과 성을 초월한 작가로 우뚝 섰다.
실제 사건 모티브로 한 노예제도 소설
토니 모리슨의 장편 소설 <빌러비드(Beloved)>(문학동네, 2019)는 미국의 남북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유령과 환상을 사용하여 노예제도의 비참한 실상과 기억의 문제를 다각도로 담아낸 작품이다. 주인공 '세서'는 농장에서 자유의 땅으로 도망친 여성 노예이다. 세서는 시어머니 '석스' 집에서 4명의 자녀들과 평화롭게 지내던 중에 갑자기 쳐들어온 노예 주인에게 쫓기게 된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노예의 숙명을 물려주기 싫었던 그녀는 온 가족 자살 시도를 하다가 2살 된 딸만 죽게 만든다. 두 아들이 떠나고 석스가 죽고 난 후 세서와 둘째 딸 덴버는 아기 유령이 출몰하는 집에서 고립된 채 살아간다. 18년이 지난 어느 날, 농장에서 같이 노예 생활을 하던 '폴 디'가 나타나자 유령은 사라지고 곧바로 신비한 젊은 흑인 여성인 '빌러비드'가 등장하면서 모녀의 일상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소설은 노예제도의 모순을 직시하도록 만든다. 어머니를 살인자로 만드는 사건은 노예제도의 폭력성과 비인간성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1856년 마가렛 가아너라는 흑인 여자 노예가 노예 사냥꾼에게 잡히게 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막내딸을 죽였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석스의 집에서 아이들과 자유를 누렸던 세서는 다시 노예로 돌아갈 수 없었다. 백인 주인의 학대가 두렵기도 했겠지만 결국 노예란 주인에게 묶이는 비참한 인생이다. 착한 주인 밑에서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시기에도 큰 고통은 없었지만 자유도 없었다. 이제야 자식과 함께 자유의 삶을 얻었는데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보다 끔찍한 일이다. "그녀 자신은 도살장 마당에서 몸을 팔지언정, 딸에게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409쪽)며 울부짖는다.
노예제의 가장 참혹한 결과 중에 하나는 자유를 얻은 흑인이 다시 과거 '기억의 노예'가 되는 현실이다.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는 자유가 주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해결되지도 않고 덮어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고통스러워도 그 기억을 드러내고 "발화"(327쪽)하는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많은 흑인들에게 이런 인식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작가는 '빌러비드'로 환생한 죽은 딸이 세서를 찾아와서 과거를 끄집어내고 쏟아내게 만든다. 이는 다시 과거로 침식되어 소멸되는 아슬아슬한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치유의 순간이 주어진다. 세서는 덴버를 데리러 온 '보드윈'을 나쁜 백인 주인으로 착각하여 얼음 송곳을 들고 공격한다. 18년 전 비슷한 상황에서 2살 딸을 죽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빌러비드를 구하는 선택을 한다.
흑인 문학의 정수, 빌러비드
작가는 노예제를 겪은 흑인들의 복잡한 내면을 그려냄으로써 흑인의 인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그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들은 노예제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인간일 뿐"(p.458)이라고 언급한다.
모순된 제도와 출몰하는 기억 너머에는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갔던 흑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 삶이 비참하고 참혹했어도 그들의 인간성마저 덮을 수는 없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폴 디는 세서에게 "당신이 당신의 보배"라고 말하면서,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445쪽)라고 말한다. 세서는 "나? 내가?"라고 반문하며 소설은 끝을 맺지만 독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 독특한 서술방식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독자의 온 감각을 깨워 노예제의 폐해를 경험하게 만들고 오늘날 여러 문제까지 고민하도록 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작가는 노예제에 희생된 "육천만 명 그리고 그 이상"을 위해 썼다고 밝힌다.
제목에서 보듯이 그들을 '사랑하는 자'라고 위로하며 소설은 똑같은 과거가 반복되지 않을 내일을 제시하면서 흑인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소설의 중반까지 내용을 이해하며 읽어 내기가 쉽지 않다. 시적 언어와 환상이 뒤섞인 서술 방법으로 주요 사건과 인물 심리 묘사를 여러 장면으로 나눠서 분산시켜 제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흩어진 장면이 모아지고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후반부에 이르면 이 소설의 깊이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주류 문학과 다른 관점의 소설을 즐겨 읽거나 흑인의 역사나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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