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이하늬 “쏟아내지 않는 슬픔으로” [쿠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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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사는 사람.
배우 이하늬는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 초고 속 박차경을 이렇게 느꼈다.
"처음 떠올린 영화 이미지는 차경의 뒷모습이었다.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한 뒷모습. 거기에서 이하늬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는 이해영 감독의 안목은 통했다.
슬픔을 두르고도 무너질 줄 모르는 이하늬의 강인함은 관객에게 숨죽여 박차경을 응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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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사는 사람. 배우 이하늬는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 초고 속 박차경을 이렇게 느꼈다. 기쁨도 분노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 건조한 표정 아래 동굴 같은 슬픔을 숨긴 사람, 애간장이 끊어질지언정 속 시원히 울지 못하는 사람. 지난 12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하늬는 “찰랑찰랑 잔을 채운, 그러나 절대 쏟아내지 않는 슬픔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유령’은 1930년대 항일조직 흑색단 소속 스파이 유령이 조선총독부 신임 총독 암살 작전을 수행하는 이야기. 유령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마무리되는 원작 소설 ‘풍성’과 달리, 영화는 박차경이 조선총독부 내부 정보를 빼돌리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처음 떠올린 영화 이미지는 차경의 뒷모습이었다.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한 뒷모습. 거기에서 이하늬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는 이해영 감독의 안목은 통했다. 슬픔을 두르고도 무너질 줄 모르는 이하늬의 강인함은 관객에게 숨죽여 박차경을 응원하게 만든다.
“작품이 운명처럼 다가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유령’도 그랬죠. 액션을 소화할 수 있고 차경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는 시기에 대본이 왔거든요. 차경은 일차원적이지 않은 캐릭터라 좋았어요. 대놓고 표현하진 않아도, 얼굴을 보면 복잡하고 깊은 감정이 조금씩 드러나길 바랐죠. 무엇보다 죽을 때를 위해 삶을 아끼라는 차경의 태도가 대단히 슬프더라고요. 삶은 찬란하다고 믿고 사는 제게 매일 죽음을 직시하며 사는 차경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하늬는 차경을 연기하며 “비장이 끊어지는 듯한 슬픔”을 맛봤다고 했다. 영화 초반 동료가 죽는 장면. 차경은 울음을 끅끅 토할 뿐 목을 놓지 못한다. 이하늬는 “짓이겨지는 슬픔”이라고 표현했다. “울음을 안으로 밀어 넣으니까 몸속 어딘가가 끊기는 느낌이 들었어요. 속이 아파 며칠간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기억이 나요.” 차경과 죽은 동료의 관계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자매애나 동료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애정. 이하늬는 “재력가 집안을 부끄러워하던 차경에게 동료는 삶을 지탱해준 존재이자 가장 의미 있는 존재”라며 “삶을 내놓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연대가 얼마나 강하겠나”라고 말했다.
“살아. 죽어야 할 때 그때 죽어.” 이하늬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 대사는 영화 밖으로도 울림을 줬다. ‘유령’ 촬영 당시 건강 문제로 고생하던 박소담은 “그 대사가 나를 지탱해줬다”고 했다. 이하늬는 촬영장에서 모범을 보이는 배우로 유명하다. ‘유령’을 찍을 때도 춤까지 춰가며 배우·스태프들의 사기를 높였다고 한다. 이하늬는 “첫딸을 낳으니 포용력이 아주 조금 생겼다”며 웃었다. 화려하게 치장해 세계 미인대회에 나섰던 미스코리아는 화장 대신 삶의 희로애락을 얼굴에 새기고 있다. ‘왜 나를 배우로 인정해주지 않지’라며 조바심내던 때를 지나 “내 삶을 연기에 녹이는 배우”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30대 초반에 슬럼프를 겪었어요. 나는 언제 진짜 배우가 될까, 왜 나를 배우로 봐주지 않을까…. 그런 갈증이 있었죠. 시간이 필요했어요. 크든 작든 여러 배역을 만나면서 제게 이끼가 낄 시간이요. 한때는 1000만 영화를 가진 배우가 되면 많은 게 바뀔 줄 알았어요. 그렇지 않더군요. 신기루 같은 기록보단, 촬영장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경험했어요. 많은 관객, 높은 시청률을 바라며 연기하는 건 일확천금을 꿈꾸는 삶과 다르지 않아요.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 인간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에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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