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도 일침…"잘난 척" 욕 먹어도 다닥다닥 건 현수막 비밀

신진호 2023. 1. 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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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3시 대전시 서구 둔산동 시청역네거리. 건널목 4곳엔 설 명절을 앞두고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이 내건 현수막으로 가득했다. 신호등과 교통표지판, 공연을 홍보하는 소형 현수막까지 복잡하게 설치된 교차로는 정치인 현수막까지 걸리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18일 대전 서구 둔산동 시청역네거리에 걸린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국회의원의 현수막. 신진호 기자

시민들은 “저런 거 내건다고 누가 관심이나 두나. 다 자기들 잘난 맛에 그런 것”이라며 “모두 세금으로 설치했을 텐데 저럴 돈 있으면 어려운 사람 한 명이라도 더 도와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른 시민은 “현수막 때문에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고 지적했다. 현수막 가격은 개당 5만원 정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법 개정으로 아무 곳이나 설치 가능


명절과 연말·연시가 되면 도심을 가득 메우는 정치인 현수막이 이번 설 연휴를 앞두고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지난해 12월 관련 법(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 광고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각 정당은 허가나 신고 없이 정치적 현안 등을 15일간 게시가 가능해졌다. 법 개정한 정치인이 수혜자인 셈이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현수막이 무분별하게 걸리자 각 자치단체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공문을 보내 ‘가능하면 지정게시대를 이용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작 지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현수막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대전시 중구의 한 도로변에 정치인들이 내건 현수막. 3중으로 설치된 현수막 때문에 인도가 가려 보행자의 안전이 위협을 받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 서구청 민원담당 관계자는 “(정치인 홍보를) 이해는 하지만 단속하는 처지에서 봐도 상식을 넘어설 때가 많다”며 “보행자 안전이나 교통에 방해가 되는 현수막을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는데 상대가 정치인이라 난감하다”고 말했다.


3중으로 걸린 현수막에 보행자 안전 위협


대전 중구 주요 교차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하는 야당 국회의원 현수막을 비롯해 지방의원이 내건 현수막으로 인도와 차도가 구분될 정도였다. 중구 태평동 교차로에선 현수막이 3중으로 걸리면서 아예 보행자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내건 현수막 가운데는 법을 위반한 것도 발견됐다. 관련 법 개정으로 지정 게시대가 아닌 곳에도 현수막을 걸 수 있지만 설치한 정당(정치인)과 설치 기간, 연락처를 병기해야 한다. 설치 기간인 15일을 지나면 자치단체가 철거를 요청할 수 있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대전 서구 둔산동 시청역네거리에 설치된 이장우 대전시장의 설 명절 인사 현수막. 설치 기간과 연락처가 빠진 이 현수막은 불법으로 철거 대상이다. 신진호 기자

법 개정으로 정당과 정치인들의 현수막이 급증할 것에 대비한 대전 5개 구청은 ‘정당(정치인) 전용 지정게시대’를 설치했지만, 정치인들이 지키지 않아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대전의 한 구청 관계자는 “분명히 불법은 맞지만 철거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전문가 "정치인 업적 홍보용, 법 재개정해야"


배재대 행정학과 최호택 교수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기 위해 법을 개정한 것도 모자라 무분별하게 현수막을 설치하면서 오히려 정치에 대한 반감만 커질 것”이라며 “정치문화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라도 사회 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홍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관련 법 재개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자기가 한 것도 아닌데 거짓 공적을 써서 현수막을 내걸거나 설날 인사로 전국이 몸살”이라며 설 명절을 앞두고 인사용 현수막을 걸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시민 세금을 허투루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홍 시장은 거짓·과시성 현수막이 도시 미관을 해치기 때문에 설 연휴가 지나면 곧바로 철거할 방침이다.

18일 오후 대전 서구 관저동 도로변에 설치된 정당과 정치인의 현수막. 프리랜서 김성태

인천지역 10개 군수·구청장협의회는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걸린 정당과 정치인 현수막을 단속할 수 있도록 현행 옥외광고물법과 시행령 재개정을 요구하는 공동 건의문을 채택, 지난 12일 행정안전부에 전달했다.


인천지역 군수·구청장 "경관 훼손하면 철거" 건의문


건의문에는 국민이 공감하는 수준에서 정치 현수막 규격과 수량·위치 등 세부 기준을 마련하고 도시 경관을 훼손하거나 차량·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해당 자치단체가 철거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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