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 엄마입니다, 가수 이승윤씨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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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기자]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교재가 있어야 해에에에."
지난해 11월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가수 이승윤의 노래 <교재를 펼쳐봐>가 울리기 시작했다. LOVE IN SEOUL 2022 이승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내 심장도 드럼 소리에 맞춰 같이 쿵쿵,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순식간에 2시간이 흐르고 공연이 끝났는데 목이 아팠다. 내가 이렇게 소리를 많이 질렀다고? 싶어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소리를 지르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더니 속이 시원했다. 그래, 나는 여전히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소리를 지르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기분이 더 좋아졌다.
▲ 3층에서 본 공연장 3층에서 공연이 끝날 때 본 화면 |
ⓒ 김성희 |
공연장을 나오면서 무대와 가까이 있는 앞자리를 쳐다보았다. 티켓팅이 시작되고 1분 만에 매진된 공연에 티켓을 구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3층 꼭대기 자리라 노래하는 가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게 내내 아쉬웠다. 다음에는 앞자리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마음속에 몽글몽글 차올랐다.
집에 돌아와서 매일 그날의 공연 영상을 찾아보고, 다시 예전 공연 영상들을 돌려 보면서 하루하루 보냈다. 같은 노래를 듣고 또 들으니, 하루는 퇴근하던 남편이 "아, 그걸 또 듣고 있냐, 정말 또라이 같구만~" 하고 농담처럼 진심인 듯 말했다. 그때 '아, 이게 덕질이란 건가?'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아이돌 1세대, HOT와 젝스키스 중 누구를 좋아하느냐에 따라 친구 무리가 갈리던 시절에 십 대를 보냈고, 영화가 좋아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에도 영화 자체가 좋았을 뿐, 누군가의 팬이 되어 본 적 없다. 그런 내가 덕질이라니.
얼마 전, 큰아이 출산 후 조리원에서 만나 14년 동안 육아를 함께 한 동기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이승윤의 공연에 갔던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한 언니가, "그럼 현빈은 이제 안녕 한 거야?" 한다. 또 다른 언니는 "송중기는? 너 송중기 좋아가지고 얼굴 새겨진 맥주캔 집에 전시해 놓고 그랬잖아~" 한다. "아, 내가 그랬나? 하하" 답을 해 놓고 보니, 마치 과거 남자친구 떠올리듯 그때 그 시간들이 떠올랐다.
배우 현빈은, 첫째 아이를 낳은 그 이듬해 봄인 2011년 개봉한 영화 <만추>의 주인공이었다. 상대역인 탕웨이를 보고,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하고 말하는 장면에서 마치 그 말이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조산해 아이는 미숙아 치료를 받고, 회사는 후임을 구할 시간도 없이 빈 자리가 생겼다.
처음 엄마가 되어 아이 울음소리에도 허둥지둥, 기저귀를 가는 어설픈 내 손길, 밤에 우는 아이를 두고 자고 싶은 마음, 또 그 마음을 탓하는 나. 모두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게 내 탓이 아니라고 해 주는 것만 같았다.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보는데, 배우 송중기가 "영화 보러 가요, 나랑" 하던 그 눈빛에 심장이 막 두근거렸다. (그 말도 물론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지만) 마치 '사람어른'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공룡을 좋아하던 다섯 살 큰아이와 티라노사우르스가 와아악~, 파키케팔로사우르스가 우우웅~, 같은 공룡말만 온종일 하다가, '영화'라는 어른들의 언어를 들으니 그럴 수밖에. 두근거리는 심장이, '엄마' 역할만 하고 있던 내게 마치 '나' 여기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달까.
▲ 이승윤 2023콘서트 포스터 |
ⓒ 마름모 제공 |
막내 아기가 돌이 지났을 때, 내가 대상포진에 걸려 젖을 끊어야 했다. 갑자기 생긴 변화로 낮이고 밤이고 우는 아기를 등에 업고 걷던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듣던 노래가 이승윤의 <달이 참 예쁘다고>였다.
"숨고 싶을 땐 다락이 되어 줄거야
죽고 싶을 땐 나락이 되어 줄거야
울고 싶은 만큼 허송세월 해 줄거야
진심이 버거울 땐 우리 가면 무도회를 열자"
노래를 찾아 들으면서, 무심코 팬카페에 들어갔는데 'NEW'가 반짝였다. 그날은 가수 이승윤이 디지털 싱글 <웃어주었어>를 발표하던 2022년 12월 1일, 공식 팬카페가 다시 열린 거였다. 이전 소속사와 계약이 종료되면서 1년이 넘도록 닫혀 있었고, 새로운 소속사와 계약하면서 언제 다시 열리나 기다리던 중이었다.
감기에 걸린 막내와 같이 온종일 기력이 없다가 내 안에서 뭔가 반짝했다. 등급이 안 되어서 글을 볼 수 없다기에 게시글 10개, 댓글 30개, 방문 3회의 등업 조건을 채우기 위해 모르는 사람의 글에 댓글을 달고, 내가 이승윤을 좋아한다는 글을 쓰다가 그 모습에 웃음이 났다. 나는 낯을 많이 가려 낯선 사람과는 대화를 잘 못 한다고 규정해두었는데, 이런 모습도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오후 3시. 방학이라 매일 집에 있는 아들 셋은 에너지가 상승하는 시간이지만, 반대로 나는 정신없이 밥을 하고 집을 치우다 가장 지치는 때다. 이때 가수 이승윤의 노래를 듣는다. 그의 라이브 퍼포먼스까지 보고 싶을 땐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영상을 보는데, 손짓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몰입하게 된다.
노래가 끝나고 거실로 나오면 어질러진 것들이나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다. '엄마'이기만 했던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즐기는 사람'이 되는 순간을 지나고 오면 너그러운 나의 한 측면을 회복하게 되는 거다. 그러고 나면 아이가 그 순간에 즐기는 즐거움도 보이게 된다.
"책이 도피처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도피처라는 표현이 내가 바깥세상이 두려워서 책에 숨었다는 뜻으로 들린다면,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곳은 머물기에 즐거운 곳, 내게 열정을 불어넣는 곳, 작가들과 만나게 해 주는 곳이었다(같은 책, 144쪽)."
이전까진 내가 엄마 노릇이 낯설고 버거워서, 현실을 외면하려 덕질을 하는 건가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리베카 솔닛의 글을 읽으면서,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구나 싶었다. 나는 그들의 연기도 그랬고, 지금 이승윤의 음악 그 자체를 정말 좋아하고 있다.
1월 26일에 나올 정규앨범 <꿈의거처>는 예약 판매가 시작됐고, 오는 2월 18일 ~19일 서울 콘서트를 시작으로 전국투어를 한다고 한다. 터널처럼 길고 길었을 겨울방학이 한결 가벼운 이유가 이걸 기다리는 설렘 덕분이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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