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곳 없는 열여덟 살 아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김성호 2023. 1. 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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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436]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김성호 기자]

 
▲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포스터
ⓒ 필름다빈
 
의도치 않게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다. 그럴 때 나서 '미안하다' 사과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나 혼자만의 잘못은 아닐 때, 이곳 생리가 본래 그렇고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라면 쉽게 사과가 나오지는 않는 것이다. 하물며 내가 그러한 집단의 말단 직원일 뿐이라면 어떻게 용기를 내 문제를 바로잡자 말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누군가는 사과하고 문제를 바로잡는다. 그래서 그것이 더욱 귀한 일이다. 미안하다고 말하여 상한 마음을 다독거리고, 문제를 바로잡아 제 책임을 다한다. 그것이 마땅히 어른이 지녀야 할 자세는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는 그런 용기며 책임에 대한 작품이다. 혹은 너무 일찍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떠안게 된 안타까운 사정에 대한 이야기다. 말 그대로 고작 열여덟에 어른이 되어야 하는, 성인들조차 쉽게 얻지 못하는 용기며 책임을 강요받는 이들에 대한 영화다.
  
▲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스틸컷
ⓒ 필름다빈
 
보호종료아동, 그들은 누구인가

최근 수년 간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호종료아동이란 아동양육시설이나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을 퇴소한 이를 가리킨다. 이제 막 대학을 진학할 나이에, 혹은 그보다 어린 나이에 사회로 나가 제 삶을 꾸려야 하는 돌아갈 곳 없어진 아이들이 곧 보호종료아동이다.

부모며 친척이며 기댈 곳이 없어 시설에 입소했던 것일텐데 얼마 되지 않는 지원금을 쥐어주고 이제부턴 너 혼자 살라고 내모니 적응이 쉬울 리 없다. 적잖은 보호종료아동이 자립에 실패하고 방황하는 것도 이 같은 제도적 허점에 기인한다. 지자체 등이 나서 생활비 등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고는 있지만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영화는 보호종료아동 양수찬(김명찬 분)과 프리랜서 기자 한윤서(임선우 분)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킥보드를 타고 배달일을 하는 수찬이 윤서의 집에 음식을 가져왔는데 윤서가 그를 붙들고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항의를 했던 것이다. 수찬이 그녀에게 붙들려 있는 동안 밖에선 그의 킥보드를 누군가 훔쳐가게 되는데 이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막을 올린다.
  
▲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스틸컷
ⓒ 필름다빈
 
서로가 서로를 물들인다는 것

영화는 생업의 기반인 킥보드를 잃어버린 보호종료아동과 그에게서 연민과 울림을 얻게 되는 윤서가 서로 교감하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다소 투박하게 빚어진 캐릭터 탓에 설득력이 없는 에피소드도 적지는 않지만 어쨌든 두 인물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스스로도 바뀌어나가기 시작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제법 놀라운 것이어서, 그들은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서로에게 제 색을 물들이고 제게는 상대의 색을 덧입히는 것이다. 그로부터 인간은 성장하게 되니 처음엔 결코 닮아갈 수 없었던 두 세계가 마침내는 교우하는 신선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영화를 감독한 주영은 작품을 쌍방 모두의 성장드라마로 기획한 듯 보인다. 성인이지만 성인답지 않았던 미숙한 어른과 어리지만 보다 인간다운 솔직한 인간이 서로에게서 제 부족함을 보고 변화하는 과정을 복합적인 성장기로 연출한 것이다. 쉽게말해 저 유명한 <레옹>에서 몸은 컸지만 마음은 소년이나 다름없었던 레옹(장 르노 분)과 몸은 어리지만 속은 애늙이였던 마틸다(나탈리 포트먼 분)이 서로를 통해 저를 찾아갔던 이야기나 진배없는 구성이라 할 것이다.
 
▲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스틸컷
ⓒ 필름다빈
 
완성도는 아쉽지만 의미 있는 시선

기실 수없이 반복돼온 쌍방의 성장드라마는 결국 차별화가 관건이 될 것인데,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가 그와 같은 개성이며 내실을 갖추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보호종료아동의 고충을 그나마 접근하여 들여다보려 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찾기는 어려운 작품이었던 탓이다.

그러나 시선은 그 자체로 가능성을 내포한다. 누구는 결코 보려하지 않는 곳에, 다른 누군가의 시선은 반드시 머물고야 마는 것이다. 그 차이가 전혀 다른 작가를 만들어내기도 하니 나는 주영이라는 감독에게 은근한 기대를 품고야 만다.

영화를 보며 생각하게 된다. 나의 열여덟은 영화 속 수찬이 졌던 무게를 지고서 견뎌낼 수 있었을까를. 우리 중 몇도 헤어나지 못할 그 삶의 무게를 왜 우리는 우리 중 가장 약한 자에게 부여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그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은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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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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