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令 세우려는 이복현의 작심발언

심나영 2023. 1. 19. 10: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소송 말라는 것" 은행권 해석
문재인 정부 때 떨어진 금융당국 위상
당국 권위 회복하려는 의도라는 시각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18일 우리금융지주 내부는 두 번 술렁였다. 손태승 회장의 용퇴에 한 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차기 회장이 소송 결정해야’ 발언에 또 한 번. 첫 번째는 언젠가 닥칠 일이었다고 넘어갔지만 두 번째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관(官)의 주도권이 더 거세지고 있다"는 게 금융권 평가다.

이 원장이 이날 기자들과 만나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손 회장이 연임을 안 하기로 결정하면서 결국 다른 회장이 올 거다. 아무래도 본인이 회장으로 있을 때는 (라임펀드 판매 제재에 대한 우리은행의 행정소송 결정건이) 결국 개인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문제다. 똑같은 결정을 하더라도 다음 회장이 (우리은행의 행정소송 여부를 판단)하는 게 상식적인 선에서 공정해 보이지 않겠나."

우리은행은 멈칫했다. 원래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을 적극 검토 중이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라임 사태와 관련해 징계를 내렸다. 우리은행은 사모펀드 신규 판매 3개월 정지 제재와 과태료 76억6000만원을 부과받았다. 그런데 똑같은 라임 펀드 판매사였던 KB증권이 바로미터가 됐다. KB증권은 지난 12일 법원으로부터 부실을 알면서 고의 판매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우리은행은 금융위 결정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걸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이복현 발언 행간엔 '소송하지 말라는 것' 은행권 해석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3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관(官)의 기세에 정면 대항하는 건 무리였다. 우리은행은 이날 오전엔 "소송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했다가 오후엔 "소송 결정을 당장 내리긴 힘들 것"이라고 한 발짝 물러섰다. 은행과 별개로 개인 소송을 진행할 거라 전해졌던 손 회장도 이날 저녁 아시아경제에 "결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원장 발언의 행간에는 ‘소송하지 말라’는 경고가 숨어있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공통된 해석이다.

손 회장이 사퇴하기까지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은 쉴 새 없이 맹공했다. "사고가 나면 반성하고 개선해야 하는데 자꾸 소송 논의만 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다."(1월5일) "용퇴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존경한다."(지난해 12월21일) "최고경영자(CEO)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정부의 뜻이다."(지난해 12월20일). 금융권은 당국이 은행들의 군기를 잡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바닥까지 떨어졌던 금융당국의 위상 때문이다.

文정부 때 추락한 금융당국 권위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17년 가을. 당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김정태 하나금융지주회장의 3연임 추진에 전방위로 용퇴 압박을 가하는 중이었다. 재직기간 중 성과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있었고 눈에 띄일 만큼의 후계자군을 키우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그 즈음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 판도가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장 실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정부가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은 회사에 대한 인사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고, 덕분에 김 회장도 3연임을 했다는 게 금융권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한 은행 임원은 "그 사건 이후로 문 정부 시절엔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에 개입할 수 없었다"며 "금융당국이 인사나 경영에 개입하려 했다가는 누가 청와대에 투서를 보내 (개입하지 말라는) 대통령의 뜻을 어겼다고 할 수 있으니 심하게 말하면 금융위나 금감원이 거의 손을 뗐다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권위 찾으려는 금융당국

은행들이 당국의 결정에 대한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2020년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 중징계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우리은행은 승소 경험까지 있다. 지난달 재판부는 DLF 판결에서 "우리은행이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 법정사항을 포함시켰고 실효성이 없다고 볼 수 없는 이상 내부통제기준 자체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유로 제재할 수는 없다"며 손 회장 팔을 들어줬다.

"금감원이 지배구조법을 잣대로 허술하게 공격하며 은행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그동안 금융 관행으로 보면 금융사가 금융당국의 징계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건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딱 한 번,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던 2009년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행정소송을 벌였던 적이 있었다. 우리은행장을 지낼 때 발생한 1조6000억원 규모의 파생상품 투자 손실에 대해 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이후였다. 황 회장은 "조직이 지장을 받으면 안 된다"며 일찌감치 자진사퇴부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때는 CEO가 사퇴로 도의적인 책임부터 졌고 ‘기관소송’이 아닌 ‘개인소송’을 했다는 점에서 최근 몇 년간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르다"며 "지금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우리금융지주를 집요하게 본보기로 삼고 있는건 금융당국이 다시 영(令)을 세우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