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명대사㉞] 한석규-김서형, 명배우의 새해 덕담 “용기 내서 굴비 하세요”(오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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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기도 힘들다. 왓챠에서 볼 수 있는 웰메이드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는 명대사가 릴레이 ‘이어달리기’를 한다. 과장하면, 아무 데나 누르면 명대사가 나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강창래 작가의 원작 에세이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의 영향이 있다. 연출한 이호재 감독이 각본한 대본이 좋아서인 건 물론이다.
그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연기의 기본을 아는 명배우의 입을 통해, 진심을 담은 발화를 통해 만나니 사소한 일상어도 명대사가 된 것이라고.
배우 한석규와 김서형은 기본기가 갖춰진 배우다. 작품을 깊이 이해하고, 그 작품 안에서 캐릭터를 사랑하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배우력에 투영해 마음으로 인물을 빚는 ‘연기의 기본’. 말이 쉽지, 실천은 무진장 어렵다. 실천하려 해도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내면의 의도와 다르게 겉으로 표현된다.
배우 김서형과 한석규는 연기의 안팎을 갖췄음을, 그 기본이 이미 훈련되고 단련되어 있음을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이하 ‘오좀매’)를 통해 명징하게 확인시킨다. 철학자에 비유하면 이미 도 닦고 가부좌 튼 경지라 심지어 탄탄한 기본을 뽐내 자랑하지도 않는다. 삶과 죽음, 그 대조보다는 닮음을 통해 인생을 얘기하는 드라마에 걸맞게 ‘인생을 닮은 모양새’로 물 흐르듯 연기한다. 턱 내려놓고, 텅 비운 채 연기한다. 그들이 비워낸 공간에 우리가 들어가 미소 짓고 눈물짓게 한다.
명품연기라는 표현이 있다면 ‘오좀매’의 이 두 배우에게 쓰고 싶다. 명품연기를 하는 명배우가 말하니, 아무 말이나 명대사가 된다. 진짜다.
“볶음밥을 만들 때, 집에서 만들면 좋은 것이… 재료를 마음껏 넣을 수 있어서 좋다.”
글로 쓰고 눈으로 보면 별 글도 아니다. 하지만 ‘버터 향’ 촉촉한 한석규의 목을 통해 나와 귓전에 다가오면 특별하게 느껴진다. 맞아, 밖에서 파는 볶음밥보다는 다양한 재료를 넣을 수 있지, 냉장고 속 채소들이 썩기 전에 볶음밥 해야겠다…에서 생각이 멈추는 게 아니라 인생에 대입하면 뭔가 큰 뜻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배우 한석규는 안긴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위안이 되는 드라마가 너무 좋아서, 사실 왓챠에 공개되자마자 얼른 소개하고 싶었다. 난생처음 댓글 다는 방법을 배워 ‘팬심’을 전할 때까진 빠름, 빠름이었다. 기사는… 생각만 많아지고 게으름이 늘어졌다. 너무 좋은 걸 보면 내가 그 결을 살려 잘 소개할 수 있을지 겁부터 난다. 이 코너로도 써 보고 저 코너로도 써 보다 ‘명대사’ 코너로 쓰겠다고 보고한 게 2주 전이다. 그 사이, 좋은 건 누구나 알아보게 돼 있어서 호평의 기사와 댓글이 많아졌다. 얼른 기사를 쓰지 못해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잘 못 쓰면 좀 어때, 편해진 마음으로 명대사를 고르고 골라 단둘로 압축했다.
“해풍에 말린 조기인 굴비가 그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대 세도가였던 이자겸은 인조에게 반기를 들다 전남 영광으로 유배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이 맛난 생선에게 자신의 의지를 실어 ‘굽힐 굴(屈)’ ‘아닐 비(非)’, 굴비라는 이름을 지어 줍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비장함이 배어 있습니다. 굴비하겠습니다.”
번역 저자이자 인문학 강사인 강창욱(한석규 분)은 오랫동안 따로 살던 아내 정다정(김서형 분)과의 이혼을 앞두고 부탁을 받게 된다. 사명감을 가지고 청춘을 바쳐 출판사를 지켜온 대표이자 남편이건 말건 매운 비평을 가하던 출판인 정다정은 온데간데없이, 대장암 말기인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해 달라는 부탁이다. 창욱은 기꺼이 다정의 마지막 시간을 지킨다. 해본 적 없는 음식을 공부해 가며 먹는 게 힘들고 소화하는 건 더 힘든 다정을 위해 손수 음식을 만든다.
3화에서 창욱은 아내를 위해 굴비를 준비하면서, 글쟁이답게 음식과 재료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들을 공개해 오던 블로그에 굴비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린다. 마지막 말 ‘굴비하겠습니다’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끝이 정해진, 기적을 바라기엔 늦은 때임을 알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힘을 내 아내를 살피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불러온 공감의 먹먹함이다. 창욱 씨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말한다. ‘굴비하세요! 굴비할게요!’.
배우 김서형이 연기를 잘하는 거야 대한민국뿐 아니라 아시아도 알 것이다. 그런데도 또 놀랐다. 연기 폭이 이렇게까지 넓고, 이렇게까지 아래로 깊었구나. 마치 K-팝 가수가 뮤지컬 무대에 서고, 고음이 장기이던 뮤지션이 ‘동굴 저음’의 음역대를 들려준 느낌이다.
게다가 한석규와의 공연이다. 세월이 김서형의 외모는 비껴간 터라 데뷔 30년 차인 것을 깜빡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어느새 대한민국에서 연기력 최고라는 칭송을 듣는 한석규와 대등한 배우로 자리매김했음을 김서형은 스스로 입증했다.
한석규처럼 김서형의 발성을 통해 나오는 대사들이 다 명대사로 다가온다. 더구나 생을 마감하는 지점에 서 있는 역할이다 보니, 가슴을 두드리는 주먹이 세다. 김서형의 몸을 빌려 작품 속에 새로 난 정다정의 선택과 말들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마음을 씻었다.
여러 말들이 좋았지만, 담담히 죽음을 향해 살아갈 희망을 주었지만,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 아들 재호(진호은 분)에게 건넨 말을 골랐다. 여자친구 여진(조유정 분)과 서먹해진 재호에게 화해에 나설 힘을 주는 얘기인데, 남녀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인 우리네 인생의 대목 대목에 뼈가 될 명언이다.
“재호야. (어?)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필요한 건 딱 한 번의 용기 같아.”
우리는 일생일대의 중대사뿐 아니라 소소한 것까지 매 순간 선택하며 산다. 그 선택이 가져다준 호재와 행복감에 뛸 듯이 기뻐하기도 하고, 어떤 선택이 불러온 악재와 불행에 절망하기도 한다. 그래도 선택해야 한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보기’는 애초에 인생이라는 문제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인생 문제’의 보기 3번에 있는 것처럼 아니 정답인 것처럼 짐짓 가만히 있을 때가 있다. ‘얼음 땡’ 놀이 중인 것도 아닌데 ‘얼음’ 자세를 고집한다.
재호 역시 그랬는데, 엄마 다정이 ‘땡’을 해 주었다. 당신에게 ‘땡’을 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인생 잘산 것이다. 실제론, 그런 존재가 없는 사람이 더 많다. 언제까지나 누군가의 ‘땡’을 기다릴 수만도 없다. 결국 스스로 ‘땡’을 외쳐야 한다. 누군가가 ‘땡’을 해 주었든 스스로 했든, 그다음은 똑같다. 용기 내서 움직여야 한다, 한 번뿐인 인생 후회하지 않으려면, 아니 후회를 줄이려면 ‘딱 한 번의 용기’를 내보자. 그게 바로 지금 당신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 그것을 멈춰야 하는 그때가 바로 오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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