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판매 0대' 현대차 굴욕? 수입차에 PHEV 안방 내준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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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차량 대수다. 반면 수입차 브랜드는 지난해 11월까지 PHEV 1만2076대를 한국 시장에서 팔았다. PHEV 시장을 수입차가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PHEV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장점을 섞어 만든 차다. 엔진을 돌려 배터리를 충전하는 하이브리드차와 달리 PHEV는 외부 충전이 가능하다. 전기차처럼 모터만으로 장거리를 달릴 수 있다. 최근에는 전기 모터만으로 최대 100㎞를 달릴 수 있는 차량까지 등장했다. 다만 하이브리드차보다 고용량 배터리를 사용해 생산 단가가 높다는 단점이 있다.
국내 PHEV는 수입차 독무대다. BMW와 벤츠, 볼보는 앞다퉈 PHEV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 인기 모델인 BMW 530e는 지난해에만 2500대 넘게 팔렸다. BMW X5 4.5e는 1000대 이상 팔렸고 벤츠 E300e와 볼보 XC90 T8은 500대 이상 판매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현대차의 굴욕이지만 ‘판매량 0대’는 의도적인 선택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현재 국내에서 PHEV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 현재란 단서가 붙은 건 과거에는 PHEV를 판매해서다. 앞서 현대차는 2015년 국내 시장에서 쏘나타 PHEV 모델을 선보였다. 쏘나타 PHEV는 미국 자동차 전문미디어가 선정한 10대 엔진에 오르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저조한 판매량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기아에서 니로 PHEV를 출시했지만, 국내 소비자의 이목을 사로잡지 못했다. 몇 차례 실패에 현대차그룹은 PHEV를 버리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전기와 하이브리드차 사이에 자리한 PHEV를 과감히 포기한 것이다. 이런 결정에는 전기차보다 자주 충전해야 하는 PHEV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불만도 더해졌다.
해외 시장 상황은 국내와 정반대다. 현대차그룹은 유럽과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싼타페·쏘렌토·투싼 PHEV를 연달아 출시하면서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 싼타페 PHEV의 경우 전기 모터로만 50㎞를 주행할 수 있는 상품성도 갖췄다. 현대차그룹의 친환경차 판매량 중 PHEV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1.9%에서 2021년에는 14%로 늘었다.
시장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국내 PHEV 시장에서 자리 잡지 못한 이유로 정부의 보조금 정책을 들기도 한다. PHEV를 포함한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구매보조금 지원제도는 2021년 1월 1일부로 폐지됐다. 국산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조금 의존도가 낮은 수입차 브랜드가 PHEV 판매량에서 반사이익을 누린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정부가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인센티브를 중단하지 않았다면 국내 PHEV 시장이 지금보다는 더 성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와 달리 해외에선 PHEV가 중요한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실제로 중국 1위 전기차 기업 BYD는 지난해 PHEV와 전기차를 각각 94만대, 91만대를 생산했다. 절대 생산량에서 PHEV가 전기차를 앞설 정도로 수요가 받쳐준다는 얘기다. 당분간 중국을 중심으로 PHEV 시장이 확대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정진수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PHEV 기술은 세대를 거듭하며 일본의 연비 수준까지 향상됐고 경제성 측면에선 전기차를 상회하고 있다”며 “PHEV는 2035년까지 내연기관 시장을 대체·잠식하면서 자동차 시장을 전기차와 양분할 수 있다”고 봤다. 2035년은 유럽연합(EU)이 정한 내연기관 판매 금지 시점이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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