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선거제도 개편의 성공 요건
선거제도 개편이 성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새 제도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는 선거제도 개편의 취지와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목적 달성을 위한 장치를 세밀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도 개편의 당사자 즉 국회의원들의 인식과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 인터뷰에서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로 인해 선거가 너무 치열하고 진영이 양극화돼 사회 갈등이 심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일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 한국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진영 정치와 이로 인한 정치 양극화다. 이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핵심 조건인 권력 분산의 제도와 다양성의 가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생긴 문제다. 단순다수결 소선거구제도는 이런 문제를 만드는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다. 소선거구제도는 거대 정당에 절대 유리한 제도이고 필연적으로 양당제를 만든다. 이는 승자독식의 대통령 선거제와 맞물리면서 양당을 생사를 건 싸움판으로 내몬다. 여야 간 타협과 양보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여야 간 타협의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강대강(强對强) 충돌이 불가피한 양당제보다는 다당제가 낫다. 다당제는 하나의 정당이 원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구조다. 법안 통과를 위한 정당 간 연합은 불가피하다. 물론 양당제보다 입법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적대적 양당제가 만드는 동물 국회 혹은 식물 국회를 고려하면 다당제에서의 입법 효율성이 더 높을 수 있다.
그렇다면 중대선거구제에서는 소수당의 원내 진입 길이 넓어지고 다당제 구조가 만들어질 것인가? 만약 3~5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라면 소수당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은 여전히 기대하기 어렵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30개 기초의원 지역구에서 3~5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시범 도입했다. 하지만 총 109개 의석 중 105석이 거대 양당에 돌아갔다. 소선거구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결과였다. 만약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득표율과 의석수 간의 비례성을 높이고자 한다면 비례대표제가 더 적합한 방식이다.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누는 비례대표제는 다당제 체제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진영 정치 해소라는 선거제도 개편의 궁극적 목적에 가장 효과적인 제도적 장치다. 이 경우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과 권역의 크기가 새 선거제도의 성공을 가늠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다. 현 지역구 의원들이 가진 기득권의 벽을 허물 수만 있다면 전체 의원을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는 것이 선거제도 개편의 궁극적 목적에 가장 부합한다.
소선거구제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은 지역구 유권자와 소통하면서 그들의 의사와 이익을 잘 대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을 볼 때 이제껏 우리 국회의원들이 유권자와 소통하면서 대표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한 적이 없다. 이와 더불어 사회 구조가 나날이 복잡하고 다양해지면서 지역구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이익과 가치를 찾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런 점에서 좀 더 작은 지역을 대표하는 기초의원에게 대표성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더 낫다. 지방의회가 활성화되면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인 권력 분산의 제도와 다양성의 가치를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적대적 진영 정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당제가 바람직하다. 선거구가 클수록 즉 권역의 범위가 넓을수록 선거의 비례성이 높아져 소수당의 득표율이 의석수로 정확히 반영될 수 있다. 다당제하에서 좀 더 다양한 이익과 가치가 대표될 수 있고 정당 간 타협과 양보의 정치를 기대할 수 있다.
선거제도 개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의 이성과 양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총선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우리 정치의 밑바닥을 그대로 보여줬다. 어떤 선거제도냐에 따라 개별 의원들의 유불리는 나뉠 수밖에 없다. 그간 비례대표 확대에 대한 공감대는 널리 형성됐다. 그렇지만 지역구 의원들이 가진 기득권의 벽을 넘어설 수 없었다. 정치인들이 늘 말하는 ‘국민의 뜻’을 새 선거제도에 양심껏 반영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새 선거제도가 국회의원들의 탐욕과 꼼수로 인해 추악한 괴물로 변질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윤성이(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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