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소득 4만 달러 길목, 국민은 왜 행복하지 않나

2023. 1. 1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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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당신은 지금 행복하신가. 2023년 대한민국 국민은 얼마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작금의 현실을 보면 참담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10~30대 사망 원인 1위 자살이다. 출산율 0.8명, 출생아 수 20만명대로 저출산은 심각하고 급속한 고령화와 고독사 급증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N포세대’가 늘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국가 행복도 조사’에서 한국은 59위라는 낮은 성적을 받았다. 특히 사회적 지원, 타인에 대한 관용도, 자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 등 항목에서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관용이 부족하고 배타적인 성향이 있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경제 측면에서는 분명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코로나19 사태로 3년여 어려움 속에서도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0위권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도대체 왜 국민 개개인의 행복도는 이렇게 낮은 것일까. 행복은 실제로 경제적 상태와 관련이 아주 깊다고 한다. 전통적인 주장으로 꼽히는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행복도는 경제적 수입(소득)에 비례해서 증가하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더는 증가하지 않는다. 연간 가구 소득이 약 8200만원 정도에 이르면 더는 수입 때문에 행복감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연구 당시의 물가, 거주 지역, 주거지 환경 등에 의해 영향을 받겠지만, 수입이 증가하더라도 계속 행복감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경제 10위권, 국가행복도는 59위
‘수입과 행복은 비례’ 통념과 달라
국가와 정치가 제 역할 잘해줘야
소득 수준 걸맞은 국민행복 가능

하지만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기존 연구와 상충하는 결과가 보고됐다. 인간의 행복을 연구해온 매튜 킬링스워스 선임연구원이 돈과 웰빙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보자. 그는 미국에 거주하는 18~65세 3만3391명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을 묘사한 내용의 데이터 172만5994개를 수집해 분석했다. 그 결과 돈이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며, 돈이 많을수록 그에 비례해 점점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이 연구는 수입이 일정 금액에 달하면 추가로 수입이 늘어나더라도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기존 연구 결과와는 반대되는 내용이다. 그 원인은 돈이 많을수록 일상생활에서 돈으로 인한 부족함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통제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도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정할 때 선택지가 그만큼 많아진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행복이 경제적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에도 세계 경제 10위권인 한국의 경제적 수준에 비해 국민 개개인의 행복도가 지나치게 낮은 이유는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대부분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불만과 불행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원인은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적 분위기, SNS 발달로 인해 더 쉬워진 타인과의 비교, 경제적 무력감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 한국 사회는 극단적 양극화, 다른 집단에 대한 적대감, 혐오 현상이 극심한 데 따른 사회적 갈등이 삶의 행복도를 떨어뜨리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진화인류학자인 장대익 가천대 석좌교수는 『공감의 반경』이란 책에서 이런 현상을 지적했다. 장 교수는 자기편에 대한 ‘선택적 공감 과잉’의 문제라고 분석하면서 이로 인해 한국사회의 이념·젠더·계층 간에 갈등과 양극화가 심화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양극화, 극단적 혐오와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속 집단만이 아닌 외부 집단으로 공감의 범위를 확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근 고독사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1000만에 이르는 1인 가구,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절과 소외, 무한경쟁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외로움 등은 단지 노년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시민 절반 이상이 일상에서 외로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50대는 64.8%, 30대는 37.8%나 됐다. 영국은 외로움을 관장하는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해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고, 일본도 ‘고독·고립 대책부’를 신설해 고독과 자살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사회적 문제나 갈등을 해소해 개개인의 행복도를 높이는 것은 국민만의 몫이 아니다. 국가는 국민을 행복하게 할 의무가 있고, 이는 상당 부분 정치를 통해 구현해야 한다. 원칙과 공정이 통하는 사회가 되도록 국가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도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민 행복지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1인당 소득이 4만 달러가 되면 삶의 질에 관심이 커지고 국민의 정신건강 요구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우리나라는 2021년 기준 3만5000달러를 돌파해 4만 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다. 올해는 부디 모든 국민이 좀 더 행복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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