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퍼스펙티브] 거세질 '차이나 불링'…기술·다변화로 이길 수 있다
호주, 피해업체에 보조금 주며 버터
중국, 자국 피해 땐 수입금지 안 해
긴 호흡의 자구책으로 극복 가능해
중국의 경제적 괴롭힘 대응 전략
중국의 코로나 폭발로 한국과 중국 간 입국 규제 전쟁에 불이 붙었다. 시진핑 정권은 윤석열 정부가 중국인 입국자에 대한 방역을 강화하자 최근 한국인에 대한 단기·일반 비자 발급에 이어 경유 비자 면제까지 중단했다. 특정 국가와 정치·외교적 갈등이 빚어질 경우 중국이 경제나 다른 분야를 통해 보복하는 행태를 '차이나 불링(China Bullying)'이라 한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전형적인 차이나 불링이 아닐 수 없다.
차이나 불링의 사례는 적잖다. 각국의 대응도 다양했다. 어떤 나라는 바로 무릎을 꿇었지만, 정면 승부에 나섰던 경우도 많았다. 당장은 힘이 부쳐도 다변화 조치 등의 와신상담 끝에 압박에서 해방된 나라도 적잖았다. 각국의 대응 형태와 중국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례를 짚어본다.
백기·읍소 등 대응 다양
차이나 불링이 본격화된 때는 중국의 경제력이 막강해졌던 2000년대 후반이었다.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가 체류 중이던 폴란드를 방문해 면담하자 중국 정부는 에어버스 150대의 구매를 취소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프랑스는 2009년 티베트가 중국 영토라는 성명을 내고 관계 개선에 나선다. 이후 중국은 적어도 8번의 경제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2018년에 나온 포스코경영연구원 보고서는 차이나 불링에 대한 대응 방식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첫째는 '백기투항형'으로 2008년 프랑스 사례와 함께 2012년 영국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당시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중국의 반대를 무시하고 달라이 라마를 접견했다. 그러자 중국은 고속철도, 원자력 발전 등과 관련된 80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를 중단하겠고 으름장을 놨다. 영국은 처음엔 강경하게 나왔지만 다음 해 캐머런도 티베트는 중국의 영토라고 선언하며 꼬리를 내렸다.
두 번째는 '읍소무마형'으로 불가피한 상황을 설명하며 중국 측 양해를 구하는 방식이다. 2016년 11월 몽골은 자국 내 많은 티베트 불교 신자를 의식해 달라이 라마를 초청했다. 중국이 이에 통관세를 부과하고 전기 공급을 차단하자 몽골은 2020년까지 그를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즉각 사과했다. 2016년 이후 사드 갈등 때 문재인 정부가 보인 태도 역시 읍소무마형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 후 한한령(限韓令)과 함께 한국 관광 금지 등의 보복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문 정부는 맞서기는커녕 사드 추가 배치 배제, MD 체제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라는 '3불 정책'을 밝히며 무마에 나섰다.
굴복 않는 나라 많아
세 번째 유형은 중국에 당당하게 맞서는 '정면대응형'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 분쟁을 이어온 필리핀과 베트남이 여기에 해당한다. 필리핀은 2012년 4월 중국 어선이 분쟁 지역인 스카버러섬에서 조업하자 군함을 보내 단속했다. 중국은 관광 중단과 바나나 수입 금지로 보복에 나섰으나 필리핀은 굴하지 않고 영토 문제를 국제중재재판소로 가져가 이긴다. 베트남 역시 분쟁지역인 시사(파라셀) 군도에서 중국이 석유 탐사를 강행하자 함정을 파견, 양측이 충돌했다. 사태가 악화하면서 베트남 내에서는 격렬한 반중 시위가 일어나 중국 기업들이 피해를 보았다.
마지막 유형은 한국이 가장 주목해야 할 '와신상담형'이다. 시장 다각화와 신기술 개발 등으로 차이나 불링을 슬기롭게 극복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맞붙었던 2010년의 일본, 2016년 대만, 그리고 2018년 호주가 그런 케이스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뼈있는 대중 정책을 제시했다. '상호 존중'의 원칙 아래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윤 정부는 최근 강단 있는 대응으로 인기를 얻은 터라 중국에 대해 호락호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중국은 차이나 불링으로 맞대응할 공산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한 나라들의 전례를 분석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틀림없다.
일본, 기술 개발로 대응
2010년 영유권 분쟁 지역이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을 일본 순시선이 나포했다. 즉각 중국은 일본에 몹시 중요한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다. 희토류는 각종 전자 제품의 핵심 원료여서 이것 없이는 못 만드는 물건이 수두룩했다. 일본은 일단 구속했던 중국인 선장을 풀어주고 사태를 무마했다. 하지만 이는 시간벌기용 전략이었다. 이후 일본은 90%에 육박했던 대중 희토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호주·베트남·인도 등 수입선 다변화에 노력했다.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일본 기업들이 희토류 없는 제품 개발에 힘을 쏟았다는 사실이다. 희토류 없는 산업용 모터 및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인 자석 등이 이때 탄생했다. 결국 일본의 대중 희토류 의존도는 2009년 86%에서 2015년 55%로 줄었다.
대만의 관광객 대체 전략
차이나 불링의 대표적 전략 중 하나가 관광 중단이다. 웬만한 나라에선 중국인 여행객이 관광산업의 최대 고객이다. 이런 터라 중국은 걸핏하면 특정 국가를 관광 금지국으로 지정해 못 가게 한다. 2016년 새로 취임한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반대하며 독립을 강조하자 관광 금지가 내려졌다. 당시 전체 관광객의 40%를 차지했던 중국 본토인들이 발길을 끊자 대만 관광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대만은 항복하는 대신 관광객 다변화에 나섰다. 우선 한국·태국 등에 비자 면제 특혜를 주고 판촉 행사를 펴는 등 공격적인 유치 작전을 폈다. 특히 동남아 국가에 눈을 돌리는 '신남방정책'을 채택했다. 이 결과 중국 관광객은 16% 줄었지만 2016년 한해 전체 숫자는 전년보다 2.5%나 늘었다. 다변화 정책의 승리였다.
긴 싸움 끝에 승리한 호주
가장 주목해야 할 사례는 2020년 시작된 호주에 대한 차이나 불링일 것이다. 중국의 보복 조치 직전, 호주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8.8%에 달했다. 그럼에도 호주는 2010년대 중반부터 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 패권주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 사태와 관련, 중국에 대한 국제적 조사를 요구해 시진핑 정권의 분노를 샀다. 이에 중국은 보리·와인·면화·목재·랍스터·구리 등 대중 수출 비중이 20%를 넘는 품목에 대한 금수 조치를 단행했다. 특히 당시 중국은 발전용 수입 석탄의 50%를 호주에서 들여왔으나 이 역시 수입 중단했다. 언뜻 봐서는 호주가 결정적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구도였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수입선이 끊어진 랍스터 업자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등 피해 최소화에 노력하며 중국의 보복에 굴하지 않았다. 호주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과 관련,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두 가지다. 먼저 중국은 금수 조치로 자국의 피해가 클 것 같은 품목은 건드리지 않았다. 철광석이 바로 그런 품목으로 중국 전체 수입의 50%를 호주산이 차지했다. 호주산 철광석을 막으면 중국의 제철 회사는 물론 철을 써야 하는 다른 업체들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둘째, 호주산 석탄의 중국행은 막혔으나 이 때문에 새로운 판로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호주산 석탄의 공급을 끊으면서 수입선을 러시아와 인도네시아로 돌렸다. 그러자 그간 이들 나라에서 석탄을 구입해왔던 한국·일본·인도 등이 호주산을 찾게 됐다. 호주로서는 큰 피해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호주에 대한 경제 제재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중국은 다시 호주산 석탄을 수입하기로 했다고 지난 12일 보도됐다. 2년간의 경제 갈등에서 호주가 승리한 셈이다.
다변화와 기술개발이 비결
차이나 불링을 극복한 나라들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우선 일본의 경우 수입선 다변화와 함께 중국에 의존해 왔던 희토류가 아예 없거나 이를 대폭 줄인 제품 개발로 대응한 점이 눈에 띈다. 중국의 여행 금지로 어려움에 부닥쳤던 대만은 한국과 함께 남쪽으로도 눈을 돌려 동남아 관광객 모집에 성공했다. 또 수입 금지 당한 파인애플 등 농산물 분야의 새로운 판로를 개척했다. 최근 중국과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호주의 경우, 수출 다변화와 함께 어려움에 처한 수산업자 등을 정부가 나서 지원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 같았던 석탄의 경우 시장 메커니즘으로 예상보다 피해가 작았다. 아울러 중국이 수입 금지를 취할 경우 막대한 자국 손실이 우려되는 철광석은 그대로 놔뒀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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