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파파 박의 눈물
박항서(64) 감독이 베트남 축구대표팀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끝냈다. 지난 16일 막을 내린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컵 준우승을 이끈 뒤 베트남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2017년 9월 사령탑에 오른 이후 5년 4개월 만이다. 지난 17일 화상 기자회견에서 박 감독은 “사랑방 같았던 의무실에서 선수들과 함께 뒹굴며 보낸 그 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박 감독과 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왔지만,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경남 산청 출신)가 눈물을 보이는 장면은 처음 봤다.
베트남은 한국 축구와 견줘 경기력·인프라 등 모든 게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박 감독은 ‘파파 박(Papa Park)’이라는 별명처럼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심정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경기 전·후에 꼭 필요한 식이요법이나 운동 방법 같은 기초적인 영역부터 세계 축구의 최신 흐름까지 차근차근 가르쳤다. 지난 5년여 시간은 베트남 대표팀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넘어 시스템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조한 시간이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은 물론, 축구협회 관계자들에 ‘자부심’ ‘책임감’을 강조하며 능동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베트남 축구계는 당초 ‘외국인 감독’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강했다. 앞서 독일·브라질·포르투갈 등 내로라하는 축구 강국 출신 지도자에게 지휘봉을 맡겼지만, 이렇다 할 성공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명시된 역할만 또박또박 수행한 그들은 ‘능력 있는 감독’이었을지 몰라도 ‘존경할만한 스승’은 아니었다.
파파 박은 달랐다. 운동장에선 정신이 번쩍 들 만큼 호통을 치다가도 축구화를 벗고 나면 자상한 아버지처럼, 큰형처럼 선수들을 대했다. 다친 선수를 위해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양보하고, 의무실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선수들에게 직접 마사지를 해준 건 베트남 축구가 경험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박 감독의 리더십이 진심에서 비롯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 국민에게 ‘한국인 박항서는 열심히 했던 지도자’ 정도로 기억된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마지막 소감을 밝혔다. 미안하지만 틀렸다. 열심히 했을 뿐만 아니라 잘했고, 멋있게 했다. 그의 노고에, 아름다운 눈물에 박수를 보낸다.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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