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159) 세상(世上)이 버리거늘
세상(世上)이 버리거늘
윤이후(1636∼1699)
세상이 버리거늘 나도 세상을 버린 후에
강호(江湖)의 임자 되어 일없이 누웠으니
어즈버 부귀공명(富貴功名)이 꿈이런 듯 하여라
-지암일기(支庵日記)
나의 뿌리는 어디인가?
이 시조는 발상이 재미있다. 세상이 나를 버려서 나도 세상을 버려 버렸다. 버리고 나니 강호의 임자가 되었다. 자연 속에 일없이 누워 있으니 세상의 부귀공명은 한 조각 꿈과도 같다.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고 세상의 배척 때문이라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강호한정가(江湖閑情歌)와 차이가 있다.
윤이후(尹爾厚)는 현종과 숙종 때의 문신이다. 자는 재경(載卿)이고 호는 지암이며 본관은 해남으로 고산 윤선도의 손자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고, 집안에서 서로 양자로 삼으려고 했다고 한다. 39세 때 조정에서 불태운 할아버지의 소(疏)와 예설(禮說)을 베껴 올렸다가 기각당했다.
민족의 큰 명절 설 연휴를 맞는다. 코로나19로 억눌려 있던 귀향 욕구가 분출하리라. 한국인의 귀소 본능은 유명하다. 부모님께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자 한다. 돌아가셨다면 산소를 찾아서라도 보여드렸다. 부모한테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성공한 것으로 쳤다.
조정에서 버린 할아버지의 상소문을 찾아 다시 살려내려 한 윤이후처럼 이번 설은 자신의 뿌리 찾기로 회귀해 봄이 어떠한가.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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