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 정권 정책 실패 책임자들이 반성은커녕 세력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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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청와대 출신 등 친문재인 포럼 띄워 세 결집
‘사의재’이름…정작 다산은 “폐족, 무리 짓지 말라”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이나 청와대 요직을 지낸 인사들이 모인 정책 포럼 ‘사의재’가 어제 출범했다. 출범 기자회견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여러명도 참석했다. 민간 싱크탱크를 내세웠지만 ‘친문(친문재인)계’ 인사들이 총결집한 모양새다. 사의재 측은 문 정부 5년의 국정 운영에 대해 성찰하고 개선·발전시킬 것을 찾겠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그러면서도 “도를 넘는 전 정부 지우기나 전 정부 정책 과정을 범죄로 둔갑시키는 것은 지난 5년의 대한민국을 비트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를 겨냥했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탈원전 정책 등에 대한 수사나 감사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도도 숨기지 않았다.
이들이 계승·발전을 거론하는 문 정부의 정책은 실패로 끝난 것이 허다하다. 이 포럼에는 당시 부동산 정책을 이끌었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문 정부가 시행한 규제 위주의 부동산 정책은 유례 없는 집값 폭등과 전세대란을 초래했다. ‘영끌’과 ‘빚투’로 몰아넣어졌던 젊은 세대는 지금 고금리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자리 불안을 초래하고 소득 격차를 더 벌린 소득주도성장도 ‘마차가 말을 끄는 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탈원전과 퍼주기 정책의 악영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포럼 참여자 중에선 정책 실패를 가리려고 통계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조사 대상이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인사들이 우선해야 할 일은 세를 모아 방어에 나서는 게 아니라 민생 파탄에 대해 스스로의 진솔한 반성문부터 쓰는 것이다.
친문 인사들이 결집하는 시점도 묘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커지는 중인 데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친문 세력을 대표할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이 포럼이 권력추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란 관측들이 벌써 나온다. 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것은 부동산 등 민생 정책 실패에 따른 민심 이반이 원인이었다. 이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사들이 집단을 이뤄 정치적 부활을 노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포럼의 이름인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됐을 때 머무른 곳이다.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적게, 행동은 무겁게’ 등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의 거처라는 뜻이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2007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자 “친노라고 표현돼 온 우리는 폐족”이라고 했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폐족은 서로 동정하는 마음을 품게 마련이라 서로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같이 수렁에 빠져버리는 수가 많다”며 무리를 짓지 말라고 일렀다. 친문 인사들은 사의재라는 이름만 갖다 쓸 게 아니라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한 다산의 정신부터 제대로 성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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