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산은 초록이 아니라 파랬다…김영재 화백, 향년 93세 별세
약 40년간 푸른색 산(山) 그림을 그린 김영재 영남대 미술학부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향년 93세.
18일 유족에 따르면 김 교수는 지난 10일 오후 7시45분쯤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4일 발인을 거쳐 고인의 뜻대로 전우들이 묻힌 괴산호국원에 안장됐다.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고인은 건국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1956년 배문고 미술 교사로 일하다 뒤늦게 홍익대 대학원(회화과)을 다녔다. 1965년 경희대 여자초급대 요업공예과를 거쳐 1969년 영남대 여자초급대학 미술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1974년 영남대 회화과 교수로 옮겼다.
1959년 '봉덕사의 종', 1960년 '석굴암', 1961년 '신종(봉덕사의 종)'으로 3년 연속 국전에서 입선했다. 1986년 제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1986∼1987년 한국기독교 미술인협회 회장, 1994∼1997년 신미술회 회장, 1995년 한국미술협회 고문, 1996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심사위원을 지냈다. 국민훈장 목련장(1994), 한국미술협회 올해의 미술상(2009), 이동훈 미술상(2015)을 받았다.
고인이 처음부터 푸른색 산을 그린 건 아니었다. 1960년대까지는 검은색을 주로 썼다. 2017년 한국기독공보와 인터뷰에서 "6·25 전쟁 때 군인으로 복무(예비역 대위)했다. 전쟁 직후에는 무겁고 어두운 작품을 그렸다"고 말했다.
1970년대에는 '강(강변)의 화가'로 불렸다. 1969년 영남대 조교수가 된 뒤 1994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서울과 지방을 오가면서 본 양화대교 부근의 한강 풍경, 대구 근교 낙동강변의 흰 모래사장과 비취색 강물, 수직으로 뻗은 이태리포플러 나무숲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산에 몰두한 건 1979년 스위스 알프스 등정 후 '몽블랑' 등의 장엄한 설산 스케치를 대작 유화로 제작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지리산 등 국내 산을 비롯해 히말라야와 킬리만자로, 하롱베이, 안나푸르나, 황산 등을 직접 답사한 뒤 산을 그렸다. 2010년 11월 인사동 선화랑에서 노르웨이의 산 풍경을 모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산을 초록색이 아니라 푸른색으로 표현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이른 아침 지리산 백무동에서 장터목 산정으로 가는 길이었다. 고인은 이때 파란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풍경에 심취했다고 한다. 산의 모양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단 핵심적 형상을 살리고 색의 느낌에 집중했다. 고인은 "늘 산의 감동을 가슴에 안고 그림을 그린다"며 "내 눈으로 보지 않는 산은 그릴 수 없다. 그 감동을 간직하기 위해 되도록 큰 산 명산을 찾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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