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희망’인 줄 알았던 ‘위기’
기대 못 미친 소비…금리 인상 후유증만
팬데믹 수혜 미련 접고 적극 피벗팅을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느낌이다. 지난 2년간 “코로나만 끝나면 된다”고 외쳤던 바람이 무색하게 경기 침체는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가 ‘희망’이 아닌 ‘위기’로 다가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경제 전문가 10인에게 물어 포스트 코로나 위기의 실체와 그 해법을 살펴봤다.
금리 인상, 러·우 전쟁…‘다발성 위기’
전문가들은 엔데믹 시대 경기 침체 상황을 ‘다발성 위기(Polycrisis)’의 결과라고 표현한다. 다발성 위기는 경제역사학자 애덤 투즈가 만든 개념으로, 다양한 원인이 누적·중첩돼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다. 단순히 팬데믹이 끝났기 때문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 밖에 여러 리스크가 동시에 터져 나온 결과라는 얘기다. 즉, 운이 나빴다는 진단도 가능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방심’이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팬데믹 기간 막대한 유동성을 투입한 후폭풍이 인플레이션으로 돌아왔고 최근 유동성 회수의 원인이 됐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지난해 네 차례 연속 0.75%포인트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한국은행도 뒤따라 금리를 인상했고 당연히 국내 자본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기업 차입금 이자는 최근 10달 사이 2배가 됐다. 지난해 초 연간 4% 수준이던 인수금융 조달금리는 올해 연간 8~9% 이상으로 치솟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격적인 통화 정책은 ‘엔데믹 때는 무조건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단정하고 실행한 다소 책임감 없는 조치다. 하지만 보복 소비는 생각만큼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까지는 엔데믹이 촉발한 충격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밖에도 엔데믹과 무관한 여러 악재가 겹치며 위기가 가중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표적이다. 러·우 전쟁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고 국내 핵심 산업인 배터리와 반도체 업체 공급망에 문제가 생겼다. 특히 4차 산업 핵심 광물로 꼽히는 니켈은 올해도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국제 니켈 가격은 최근 3개월 새 40% 넘게 급등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러·우 전쟁이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고 공급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며 “개별 기업 차원에서 통제하기 힘든 이슈인 만큼, 국가 차원의 지원 방안도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주요국 자국보호주의 강화 추세도 기업에는 부담이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국내 배터리, 반도체, 자동차업계에 직격탄이 됐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는 미국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신설하고 있다. 공장 건설 지역 선택의 폭이 확 줄어든 셈이다.
체질 개선으로 뉴노멀에 적응해야
포스트 코로나라는 이름의 새로운 위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복합적인 요인들이 결합된 만큼, 위기가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빨라야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부터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수출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인데, 지금 위기는 결국 글로벌 요인으로 인한 위기”며 “원자잿값 폭등과 고물가에 따른 소비 침체로 기업 재고량이 급격히 증가한 상태인데, 올 상반기까지는 재고량이 줄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서비스업이 회복하면서 상대적으로 가전 등 내구재 산업, 또 후방 산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이 침체하고 있다”며 “위기 극복은 글로벌 질서와 후방 산업 공급망이 안정될 때까지 길게는 수십 년도 걸릴 수 있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포스트 코로나 위기 극복 해법은
위기에 강한 ‘사내 유보금’, 과세 아쉬워
포스트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가 ‘기회가 아닌 위기’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위기 극복을 위해 보수적 관점에서 경영·투자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당장 유동성 확보 그리고 손익을 고려한 사업 구조 효율화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위기를 인정하고 조직과 인력 구조를 다시 짜는 등 허리띠를 졸라맬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발 빠른 대응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려면 신속한 의사 결정을 위한 ‘조직 개편’이 필수다. 여러 갈래로 나뉜 사업부를 하나로 통합하는 등 신속한 의사 결정 체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장성철 가톨릭대 글로벌미래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통제하기 어려운 조직문화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기업은 다른 무엇보다도 기존 인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과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빠른 업종 전환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코로나 수혜 기업은 과거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미련을 떨치고 선제적인 대응이 필수라는 의견이다. 황용식 교수는 “산업과 경제는 ‘생물’과 같아서 언제나 바뀌고 변한다. 마치 몇 년 전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던 당시 많은 기업이 피벗팅으로 활로를 찾았던 것처럼, 기존 코로나 수혜 업종 기업은 과감한 피벗팅으로 신성장동력을 찾을 필요가 있다”며 “더 이상 수혜가 기대되지 않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팬데믹 위기를 핑계로, 또 한편에서는 팬데믹 수혜에 도취돼 스스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방관해온 기업도 많다. 경쟁력 제고를 위한 성장동력 발굴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엔데믹 위기와 함께 최근 ‘사내 유보금’의 중요성도 재조명되고 있다. 과거 넘치는 유동성을 등에 업고 무리하게 투자를 늘려가던 기업들은 이제는 핵심 자산까지 매각하는 등 현금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쟁여놓은 ‘현금성 자산’이 있다면 위기를 버텨낼 힘이 됐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그동안 사내 유보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기업의 비상금이 아닌 ‘여윳돈’으로 인식해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판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투자, 임금·배당 등에 쓰이지 않고 기업에 쌓인 돈에 20% 세금을 물리는 ‘투자촉진세’는 원래 지난해 종료됐어야 했지만 최근 야권 반대로 3년 더 연장됐다. 규제라도 있어야 기업들이 돈을 쌓지 않고 쓸 것이라는 논리였다.
재계는 사내 유보금 취지가 오해돼 아쉽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기업은 다양한 변수에 의해 크고 작은 위기에 노출되는데, 현재 엔데믹 위기는 기업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며 “사내 유보금이 충분했다면 현재 예상치 못한 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법인세를 납부하는데 여유 자금을 쌓아뒀다는 이유로 여기에 추가로 과세하는 건 명백한 이중 과세”라고 꼬집었다.
기사에 도움 주신 분들(총 10명, 이하 가나다순)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장성철 가톨릭대 글로벌미래경영학과 교수,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3·설합본호 (2023.01.18~2023.01.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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