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악화에 상장 포기했지만… 非식품 강화하고 물류 투자 나선 ‘컬리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가 결국 코스피 상장을 연기하기로 했다. 기업공개(IPO) 추진 당시 예상했던 몸값과 현재 기업가치 간 괴리가 커졌기 때문인데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경영난 우려도 커지는 모습이다.
경기 불황에 기업가치 떨어져
컬리는 최근 “글로벌 경제 상황 악화로 투자 심리 위축을 고려해 코스피 상장을 연기하기로 했다.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컬리는 2021년 10월 NH·한국투자증권과 JP모건을 공동 대표 주관사로 선정하고 코스피 입성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해 3월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했고, 그해 8월 예비심사를 통과하며 시장의 기대를 모았다. 예심 통과 유효기간과 해외 투자자 유치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하려면 오는 2월 22일까지 상장을 마무리해야 했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컬리 상장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증시를 포기하고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가 하면, 아예 상장을 철회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럼에도 컬리는 지난해 10월 보도 해명 자료를 통해 “한국거래소와 주관사, 투자자 등과 상장 철회에 관한 어떤 의사소통도 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으며 상장 의지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도저히 현재 상장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상장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컬리는 2021년 7월 당시 기업가치 2조5000억원으로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그해 12월에는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기업가치 4조원을 인정받아 2500억원을 유치하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상장 이후 컬리 기업가치가 7조~8조원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컬리 기업가치는 최근 1조원에도 못 미친다.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 비상장’에서 컬리는 2만원대 초반에 거래 중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11만원을 넘어섰지만 5분의 1토막 난 셈이다. 상장 연기를 밝힌 이후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시가총액은 8000억원대로 떨어졌다.
컬리는 향후 상장을 재추진할 수 있을까.
우선 컬리 지분 구조부터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수차례 대규모 투자를 받으면서 김슬아 대표 지분은 5%대까지 떨어졌고, 자연스레 재무적투자자(FI) 입김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컬리 최대주주는 외국계 자본인 세콰이어캐피탈차이나로 지분율이 12.87%에 달한다. 중국계 투자사 힐하우스캐피탈 지분은 11.89%, 러시아계 벤처캐피털인 디지털스카이테크놀로지글로벌 지분도 10%를 넘는다. 이들 모두 김슬아 대표(5.7%)보다 훨씬 높은 지분율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FI의 손바뀜이 일어나야 컬리가 눈높이를 낮춰 상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존 FI들은 자금 회수를 위해 컬리가 적어도 4조원 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상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새로운 FI가 들어오면 이런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나”라고 귀띔했다.
컬리가 쿠팡처럼 미국 유가증권 시장 상장에 나설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평가다.
한국거래소는 유니콘 기업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시가총액이 1조원을 넘으면 적자 기업이라도 상장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컬리 입장에서는 미국보다는 한국 유가증권 시장 상장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상장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컬리 자금 사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는 우려도 적잖다. 컬리 측은 “계획 중인 신사업을 무리 없이 펼쳐가기에 충분한 현금도 보유했다”고 밝혔다. 2021년 말 기준 컬리의 현금성 자산은 1481억원이다. 지난해 초 프리 IPO로 2500억원을 받은 만큼 4000억원 안팎 현금을 보유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2021년 적자만 2000억원 넘어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컬리 영업적자 규모가 매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컬리 매출은 2018년 1517억원에서 2021년 1조5614억원으로 치솟았다. 덩치는 커졌지만 그에 비례해 적자폭도 늘어나는 중이다. 2018년 337억원 적자를 낸 데 이어 2019년 1013억원, 2020년 1163억원, 2021년 217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3년 만에 적자 규모가 6배 이상 불어났다. 지난해 적자는 더 커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컬리 적자폭이 줄지 않는 것은 새벽배송을 위한 물류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영향이 크다. 증권가에서는 “컬리는 직매입 구조에 식품 카테고리 특성상 이익이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다“ ”매출 원가율이 높고, 식품 폐기 손실 등 재고비용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컬리 상장이 연기될수록 자금은 더 고갈될 수밖에 없다.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어도 추후 상장 시점을 잡지 못한다면 자금줄이 말라 위기설이 불거질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잇따른 논란에 컬리는 정면 돌파하겠다는 방침이다.
신선식품 MD(상품기획) 파워로 경쟁력을 높여왔던 기존 전략을 버리고 뷰티, 리빙, 생활용품, 반려동물 용품, 완구 등 비식품군으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마켓컬리에 이은 두 번째 버티컬 서비스(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식) ‘뷰티컬리’도 새롭게 선보였다.
경남 창원, 경기도 평택에 물류센터 2곳을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물류 투자에도 나섰다. 대형마트, SSM(기업형 슈퍼마켓), 편의점, 배달 앱 등 유통 공룡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류 인프라 확보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물류센터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창원 물류센터 건립에만 들어간 비용이 630억원에 달한다. 물류센터 운영을 위한 시스템 구축, 인력 채용비용까지 감안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식품과 달리 다른 분야는 전문성이 떨어져 단기간에 실적을 높이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롯데, 신세계 등 경쟁사들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는 점도 악재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11월 영국 리테일 기업 오카도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오카도의 온라인 식료품 주문, 배송 솔루션 ‘오카도 스마트 플랫폼’ 도입, 운영을 위해 2030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신세계그룹은 전국 이마트 매장을 도심형 물류센터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e커머스 최강자’ 쿠팡이 오랜 적자를 딛고 흑자로 돌아서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점도 변수다. 재계 안팎에서는 “논란 끝에 상장에 실패한 김슬아 대표가 대형 유통사들과 지분을 교환하거나 투자를 받는 식으로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끊이지 않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3·설합본호 (2023.01.18~2023.01.31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