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대한민국 미래 없다 [소셜 코리아]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신광영]
▲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시민들이 적은 수많은 추모글이 붙어 있다. |
ⓒ 유성호 |
안전은 인간의 생명에 관한 것이다. 개인의 생명이 위협받지 않는 상태를 누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생명이 끊임없이 위협받는 상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만들어졌다. 어느 정도 코로나19가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무려 159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다. 석 달이 가까워지지만 아직 조사도 끝나지 않았다. 아직까지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무책임의 극치다.
또한, 지구적으로도 기후위기로 인류 전체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산업화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류 절멸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300년 산업화가 지구 온난화와 많은 생물의 멸종을 야기하고, 이제 인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모두 사람의 생명과 관련이 된다. 다음 세대는 온전하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가? 누가 생명을 보장하는가? 국가가 관련되어 있지만, 두 가지 사례에서 국가는 무기력하고, 그 역할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또 다른 사회적인 요인들로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자살, 교통사고와 산업재해가 그것이다.
2020년 한 해 1만 3195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하루 평균 36.5명이 자살한 셈이다. 자살 시도자는 그보다 더 많아 3만 3451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91.6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그중 36.5명이 사망에 이르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자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자살은 전 세계 사망원인 중 15번째에 해당하지만, 한국에서는 5번째로 중요한 사망원인이다. 빈곤, 불건강, 사회적 고립이 자살의 주된 원인이다.
산재사망자, 유럽의 3배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도 대단히 많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교통량이 줄어들기 이전인 2019년 교통사고 사망자는 3349명이다. 하루 평균 9.5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셈이다. 인구 10만 명당 6.5명꼴로 사망한 것이다. 이는 같은 해 독일의 2배, 일본의 2.1배, 스웨덴의 3배였다.
특히 한국의 노인은 인구 10만 명당 29.7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는 전국 평균의 4배 이상이며 OECD 회원국 중 최고였다. 2021년 교통사고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5.2명으로 줄어들었으나,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률은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일과 관련된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하는 산재 사망자도 대단히 많다. 2021년 2080명이 일과 관련해 사망했다. 이는 2021년 인구 10만 명당 4.31명으로 유럽 1.46명의 3배에 해당한다. 전일제 노동자 비교에서도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영국의 4배, 일본의 2.6배, 싱가포르의 2.1배로 높았다.
노동시간이 길수록, 안전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완화될수록 산재 사망자는 늘어난다. 또한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원청기업 노동자보다는 하청업체 노동자,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이 훨씬 많았다.
안정은 삶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삶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용안정은 소득안정을 낳고, 소득안정은 가족생활의 안정으로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 OECD에서 발표하는 평균 근속연수와 10년 이상의 장기근속 비율을 살펴보면, 한국의 고용 안정성은 지극히 낮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평균 근속연수는 프랑스 10.8년, 독일 10.9년, 이탈리아 13년이었다. 한국은 고작 5.8년에 불과하였다. 같은 해 10년 이상 장기근속 비율도 이탈리아 51.8%, 프랑스 42.4%, 독일 41.3%, 일본 47.8%(2017년)이었다. 한국은 이들 국가에 훨씬 못 미치는 21.3%에 불과했다.
정규직 고용보장 수준이 낮고,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다른 OECD 회원국들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 최근 불황으로 금융권 구조조정 대상자에 만 40세까지 포함된 것도 고용 불안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45세 정년"을 의미하는 "사오정"이 이제 더 이상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실업으로 인한 소득 상실에 대비하는 제도가 실업보험이다. 국가가 실업자의 소득을 한시적으로 보장하는 실업보험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도입했다. 한국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제도를 1995년 고용보험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했으며, 외환위기에 따른 대량실업으로 1998년 1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아직도 비정규직의 절반 정도가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있지 않다.
▲ 생명이 존중되고, 고용 안정이 강화되고,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아 평범한 사람들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
ⓒ 셔터스톡 |
참고로 다른 나라는 룩셈부르크 86%, 네덜란드 79%, 프랑스 68%, 독일 59%, 벨기에 59%, 덴마크 57%, 오스트리아 51%, 스웨덴 42%, 동유럽 국가들 0%, 일본 0%, 미국 0%였다.
퇴직 후 소득안정을 위한 제도가 연금제도이다. 1988년 도입한 국민연금제도를 1999년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국민연금은 전체 국민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1년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36.8%에 불과했다. 국민연금 가입 대상이 아닌 노인들이 비정규직에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경우도 연금 가입률이 70%대에 머물렀다. 초기보다 국민연금 대상자 확대가 이뤄졌지만, 소득대체율은 오히려 낮아져서 노후소득 안정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평범한 가정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어야 미래가 있다. 장시간 노동으로 가족생활이 어렵고, 고용이 불안정하여 자녀가 학교를 마치지 않은 40대 부모가 쉽게 해고되고, 50대에 주요 일자리에서 떠나서 자녀교육과 자신들의 30년 이상의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힘든 현실에서는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청년들은 이러한 부모의 힘든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결혼을 늦추고 출산을 기피하여,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2017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05로 대만의 합계출산율 1.125를 제치고 세계 최저가 됐다. 이후 2021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1로 더 하락했다. 인구감소로 이미 지방 소멸이 가시화되었는데 이제는 국가 소멸을 우려할 정도로 신생아가 감소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역설적으로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룬 동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반 세기 동안 한국, 일본, 대만, 중국에서 국민총생산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국민총생산의 폭발적 증가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개인과 가족을 보호해주는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공통현상, 인구 감소
일본은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과 대만은 1980년대 중반부터 그리고 중국은 90년대 초부터 합계출산율이 인구대체율(인구유지에 필요한 최소 합계출산율)인 2.1 이하로 떨어졌다. 그 결과 일본(2008년), 한국(2019년), 대만(2020년), 중국(2022년)에서 인구감소가 시작되었다.
국제연합(UN) 인구분과는 일본 인구가 2021년 1억 2461만 명에서 2070년 8614만 명으로 30.9%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인구는 2021년 5163만 명에서 30.4%가 줄어 2070년 3591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인구 대국 중국도 2021년 14억 2589만 명에서 2070년에는 10억 8529만 명으로 23.9%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대만 통계청도 대만 인구가 2021년 2360만 명에서 2070년 31.3% 줄어 1622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들 지역에서 경제는 성장했지만, 노동시장 유연화와 허술한 사회적 안전망으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불안이 더 커지면서, 신생아 출산이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미래의 거울이다. 현재 안전이 위협받고, 고용이 불안하고, 소득도 불확실하여 일상이 위태로운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미래를 꿈꾸는 것은 어렵다. 암울한 현재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대한민국이 지속되기 위해서 2023년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생명이 존중되고, 일하는 사람들의 고용 안정이 강화되고, 실업, 장애, 질병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변화를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신광영 / 중앙대 명예교수(소셜 코리아 고문) |
ⓒ 신광영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는 <소셜 코리아>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학회 회장, 비판사회학회 회장과 한국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아시아사회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 영역은 사회 불평등과 비교사회체제입니다. 저서로는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 노동, 복지와 정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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