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새롭게… 유배의 땅에서 희망을 구상하다
새해를 설계하는 1월은 설 연휴도 있어 새로운 구상을 하면서 여행하기에 좋다. 희망찬 일출을 보고 빼어난 풍경을 즐기며 맛있는 먹을거리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내륙과 바다의 볼거리를 골고루 갖추고 해돋이 풍광도 볼 수 있는 경북 포항으로 떠나보자.
포항시 남구 장기면은 포항의 남쪽 끝으로 경주시 감포읍과 어깨를 맞댄 고장이다. 장기면 읍내리 동악산(252.5m) 동쪽 자락에 장기읍성(사적)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 때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 읍성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후 고려 현종 2년인 1011년에 동쪽으로는 왜적을 막고 북쪽으로는 여진족의 해안 침입에 대비해 옛 읍성의 북쪽에 성을 쌓았다. 처음에는 토성이었다. 조선 세종 때인 1439년 석성으로 굳건히 쌓고 동해안의 군사기지 및 치소(治所)로 이용했다. 당시 동·서·북쪽에 3개의 성문이 있었고, 성안에는 동헌과 관청 소속의 건물들과 4개의 우물, 2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성의 입구는 동문이다. ‘조해루(朝海樓)’라는 문루가 있었다고 하지만 문은 사라졌고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서문은 우직해 보이는 옹성으로 남아 있고, 북문은 최근 복원돼 문루가 올라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읍성 내 관아 건물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되는 수난을 당했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1.4㎞로 12개의 치성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성벽보수와 북문 복원으로 읍성 전체의 윤곽을 가늠할 수 있고 성곽을 한 바퀴 둘러 볼 수 있다. 성곽에 오르면 펄럭이는 ‘영(令)’자 깃발이 맞이한다. 멀리 동해와 함께 장기면 일대의 멋진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성벽은 ‘힐링 로드’다.
장기 땅은 군사적 요충지였지만 한편으로는 유배지였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던 정치적 격랑 속에서 이 궁벽한 해곡으로 유배된 이들은 무려 227명에 이른다. 조선 태조 1년 설장수를 시작으로 홍여방·양희지·김수흥 등 수많은 사대부가 거쳐 갔다. 대표적인 인물이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다.
우암은 숙종 때인 1675년 5월 임금과 왕후의 사후 상복을 입는 기간을 두고 벌인 제2차 예송논쟁으로 유배돼 마산촌 오도전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약 5년간 지냈다. 머물던 초가집은 가시 울타리가 쳐졌다. 위리안치였다.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에게 장기는 자신과 대립하는 남인의 땅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우암을 통해 유학의 핵심과 중앙정계의 움직임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암은 유배 생활 중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많은 시문과 ‘주자대전차의’ ‘이정서분류’ 등 책을 썼다.
우암은 숙종 5년인 1679년에 자신이 머물던 사관 안에 자생하던 느티나무를 베어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는 거제도로 떠났다고 한다. 이후 제자들은 죽림서원을 세워 학문에 정진했고, 우암이 기거했던 집의 주인장인 오도전은 우암에게 학문을 배워 훗날 향교의 훈장이 됐다 한다.
그로부터 100여 년 뒤인 1801년 3월 장기 땅에 다산 정약용이 도착한다. 다산은 신유년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유배됐고 마현리 성선봉(成善封)의 집에서 7개월간 생활했다. 짧은 시간 동안 다산은 마을 사람의 삶과 고을 관리의 목민 형태를 담은 ‘부옹정가’와 ‘기성잡시 27수’ ‘오적어행’ ‘장기농가 10장’ 등 130여 편의 시를 남겼다. 다산은 같은 해 10월 20일 백서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서울로 압송됐다가 전남 강진으로 유배됐다. 읍성 아래 장기초등학교 교정에는 우암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고목이 한쪽에 서 있고, 그 옆에는 우암과 다산의 사적비가 나란히 서 있다.
장기읍성 북문에서 ‘다산과 우암의 사색의 길’을 따라가면 9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이 자리한다. 조선 시대의 유배 문화와 관련된 여러 전시물을 비롯해 우암과 다산의 적거지·오도전의 안채 등 유배된 사람들이 거주했던 가옥들이 재현돼 있다.
장기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구룡포와 호미곶으로 이어진다. 구룡포와 호미곶 사이에 한국의 산토리니를 꿈꾸는 마을이 있다. 호미곶면 강사리 다무포 하얀마을이다. 포경이 금지되기 전인 1970년대까지 고래잡이로 풍족함을 누려 고래마을로도 불린다. 파란 지붕과 하얀 외벽 그리고 푸른 바다와 하늘이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연상케 한다. ‘포항의 아름다운 마을’로 입소문이 났다.
포항에 영일만의 수려한 경관과 바다 풍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볼거리도 생겼다. 북구 여남동에 지난해 4월 개장해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포항 해상스카이워크’다. 환호공원 내 ‘포항 스페이스워크’에서 가깝다. 해상스카이워크는 평균 높이 7m, 총 길이 463m로 국내에서 가장 긴 해상 보도교다.
빨간색 바탕에 동그랗게 이어진 해상다리는 여남해변을 따라 바다 가운데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 다소 단조로운 코스이다. 하지만 스카이워크의 길 중앙부는 스릴을 즐길 수 있도록 유리로 설계돼 있다. 유리 밑으로 아찔한 바다의 풍경이 다가온다. 조심스레 걷다 보면 하늘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장기읍성·유배문화체험촌 무료
과메기·모리국수·생아귀탕…
자가 운전으로 포항 장기읍성에 가려면 익산포항고속도로 포항나들목에서 빠지면 된다. 장기읍성과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은 입장료와 주차료 모두 무료다.
장기읍성 인근 양포항은 포항에서 아귀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이다. 생아귀탕을 내는 식당이 많다. 맑은 생아귀탕의 담백한 맛이 인상적이다.
겨울철 구룡포의 대표 먹거리는 과메기다. 모리국수는 구룡포 주민들의 ‘소울 푸드’로 통한다. 구룡포에는 드라마 ‘동백 꽃 필 무렵’의 촬영지인 근대문화역사거리 등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 있다.
환호공원의 스페이스워크에서 스카이워크까지는 약 3㎞ 거리다. 승용차로 5분도 안 걸린다. 여남항과 스카이워크 바로 앞쪽 공간에 무료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포항=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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