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청와대 폐쇄로 몇조원 손해…대통령 행사 부끄럽지 않게 만들라”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18일 출간된 회고록『미스터 프레지던트』를 통해 “윤석열 정부가 청와대를 전면개방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좀 어이가 없었다”며 “청와대 경내는 이미 대통령 비서동과 관저를 제외하고는 개방돼 있었고, 달라진 것이라고는 청와대에 대통령이 없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탁 전 비서관은 “청와대는 적어도 조 단위의 가치가 있었다. 그 가치는 청와대에 대통령이 있어야 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라는 상징성이 유지됐을 때 부여되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이전 비용뿐만 아니라 폐쇄로 인해 몇조원에 달하는 손해를 끼친 것”이라고 적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 한미 정상이 48초 만난 것을 두고 정상회담 불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외 순방) 모든 일정은 시간 단위, 때에 따라서는 분 단위로 촘촘하게 계획된다”며 “정상회담이 아니라 자체 일정 하나라도 취소되는 건 아주 드문 일”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참모 출신 중 회고록을 발간한 건 탁 전 비서관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1195개의 행사를 기획했다고 한다. 그는 436쪽에 걸쳐 문 전 대통령 재임 중 기획한 국가 기념식, 대통령 행사, 해외 순방 등에 대한 에피소드와 청와대 생활에 얽힌 일화 등을 소개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논란이 됐던 의전 행사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동시에 현 정부의 의전 실수 등을 꼬집기도 했다. 책 제목은 작곡가 김형석씨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헌정한 곡에서 따왔다.
탁 전 비서관은 2016년 6월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함께 문 전 대통령의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에 동행했던 대통령 최측근 중 한명이다. 다만 과거 저서에 드러난 왜곡된 성의식 등으로 논란이 컸지만 문 전 대통령은 그를 계속 기용했다. 탁 전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 초반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시작해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을 거쳐 2020년 6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의전비서관을 지냈다. 사실상 문 전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하며 대통령 행사를 진두 지휘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야권은 '문재인쇼'의 기획·연출자로 탁 전 비서관을 지목했다.
그는 지난해 5월 10일 문 전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그날 자정부터 청와대를 개방한다는 소식에 “몹시 언짢고 화가 났다. 다음날 대통령이 (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다는 것을 알면서”라고 썼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날인 지난해 5월 9일 청와대 전·현직 비서관들에게 “밖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오늘 이 자리에서처럼, 우리 스스로 해온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충분하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탁 전 비서관 스스로 “지난 5년 내내 ‘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할 정도로 문재인 정부에서 그가 기획한 행사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오후 6시로 시간대를 옮겨 열린 2018년 10월 70주년 국군의날 행사다. 당시 야당은 ‘밤에 전쟁기념관에 숨어서 국군의날 기념식을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탁 전 비서관은 공중파 3사 합계 생중계 시청률이 15%를 넘어선 것을 언급하며 “‘숨어서 몰래 한 것’ 치고는 너무나 많은 국민이 함께 지켜봤다”고 반박했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 때 화제가 됐던 ‘독도새우’도 소개했다. 탁 전 비서관은 “도화새우나 꽃새우 정도로 표기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 이름을 숨기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았다”며 “독도 문제로 한일 간 갈등이 불거져 있는 상황이었고,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를 상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시점”이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행사에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초청한 이유도 소개했다. 그는 2020년 9월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행사를 언급하며 “청년의 날 메신저로 누구를 선정할지 의견 등을 거쳤지만, 결과는 같았다. BTS였다”며 “세계적인 아티스트, 한국 문화를 세계 문화로 확장한 아이콘. 대한민국 청년을 대표하는 데 이만한 인물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책에서 문재인 정부 외교 일정 중 최고의 장면으로 문 전 대통령과 BTS가 함께 찾은 2021년 유엔총회를 꼽았다.
탁 전 비서관은 미국에서 퇴임 대통령이 새 대통령에게 편지 쓰는 전통을 언급하며 “청와대 역사가 단절되고 새 정부의 태도를 보니, 전통을 만들자는 말도 쓸데가 없어 보여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를 기획하는 일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남겨두는 것으로 대신할까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쪼록 국민의 입장에서 국가 행사를 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주어진 역할이다. 건투를 빈다”고 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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