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내려가!" 쏟아진 욕설…민주노총, 압수수색 막고 생중계
18일 오전 9시쯤 경찰과 국가정보원의 서울 정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사무실 압수수색 현장은 활극을 방불케 했다. 700여명의 경찰력이 인근에 배치된 가운데 수십명의 수사관이 사무실 진입을 시도하자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입구부터 이들을 막아서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내려가! 일좀 하자고요! 뭐하는 거예요 지금!”, “화장실까지 사람이 다 들어차 있는데 뭘 더 배치해!”와 같은 고성이 터져나왔다. 한쪽에선 “경찰이라면서 왜 신원을 못 밝히냐”며 옥신각신했고, 일부 언론사의 취재에 반발해 욕설이 쏟아지기도 했다. “손가락질 하지 말라”, “반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등 민주노총 측과 경찰 사이의 감정싸움도 계속됐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통상적인 압수수색 영장 집행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저희는 막거나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매트리스를 깔고 경력을 배치해 마치 한편의 잘 짜여진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겠다고 나와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수사관들이 제시하는 압수수색 영장을 한줄 한줄 손으로 짚어가며 읽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장면은 민주노총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민주노총 관계자들과 수사관이 주고 받는 대화, 항의하며 내지르는 욕설과 몸싸움 등이 여과 없이 실시간으로 방송된 것이다.
지난달 경찰과 국정원이 북한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받는 지하조직 ‘ㅎㄱㅎ’ 관계자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 한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피의자 본인과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 등의 단체가 곧장 나서서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이들은 수사 대상자들의 신원을 스스로 공개했고 압수수색이 이뤄진 장소와 과정까지 구체적으로 밝히며 수사기관을 규탄했다. 이보다 앞선 2021년 ‘자주통일 충복동지회’ 사건 당시에도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재판에 출석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료로 조작된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등, 수사 대상자들이 언론 앞에 직접 나섰다.
간첩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는 피의자들이 자신의 혐의를 포함한 수사 과정을 직접 알리고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에 나서는 것은 최근 트렌드다. 대공 수사 경험이 많은 수사기관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이 같은 모습에 대해 “예전엔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생경하다”고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예전엔 간첩 혐의로 수사를 받는 경우엔 혐의가 사실이든 아니든 가족들이나 주변인들을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조용히 수사를 받고 신원도 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서서 수사 과정을 알리고, 생중계까지 해가며 수사기관을 비판하는 걸 보니 뭔가 대응 전략자체가 바뀐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행위가 실제 혐의가 있는 피의자가 자신이 접선한 북한의 공작원 등에게 수사사실을 알리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북한 관련 단체 관계자는 “수사가 시작되면 더 이상 북한 측과 연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이제 노출됐고 이런 이런 부분에 대해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기자회견 등을 적극 활용하는 건 아닌지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적극적 여론전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아 낸 선례들이 수사에 대한 대응 양상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유우성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과 함께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거나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나서 국정원의 ‘간첩 조작’을 주장했고 결국 2015년 무죄가 확정됐다. 또 ‘보위부 직파 간첩’으로 의심 받아 2014년 재판에 넘겨진 홍강철씨 역시 인터뷰 등으로 억울함을 호소했고 관련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홍씨 역시 결국 2020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공안 사건을 다룬 경험이 있는 변호사는 “간첩 수사는 시나리오는 화려하지만 증거가 빈약한 경우가 많다”며 “여론이 재판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을 수사 대상자들도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민·최서인·이찬규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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