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낸 노벨문학상 작가 모옌 "인생의 비극성 깨닫게 하는 게 문학"

홍지유 2023. 1. 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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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난 뒤 한동안 고향을 억누르며 살았다. 훗날 고향이 내 문학의 밑바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때부터 물고기가 바다에서 헤엄치듯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중국 현대 문학의 신성'으로 불리는 작가 모옌. 201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사진 모옌

고향에 뿌리를 둔 소설 세계로 201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작가 모옌(莫言·68)이 고향에 대한 애증을 고백했다. 20일 출간되는 산문집 『고향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아시아)에서다.


모옌 세계관의 기둥, 산둥성 가오미 마을


산문집은 2010년 중국에서 출판된『모옌산문신편』을 번역한 것이다. 모옌 소설 세계의 원형인 1960년대 중국 농민들의 빈한한 삶과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빼곡하게 담았다.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영화 '붉은 수수밭'의 모티프가 된 소설『홍까오량 가족』을 쓸 당시의 이야기도 들어 있다.

모옌은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동안 고향을 억누르는 잘못된 태도"를 갖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소설『홍까오량 가족』에 나오는 "가오미 현 둥베이 지방을 열렬히 사랑하기도 했고 극도로 원망하기도 했다"는 대목을 떠올리게 하는 고백이다. 인터뷰는 모옌과 관계가 막역한 박재우 한국외대 중국언어문화학부 명예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모옌 신작 수필집 『고향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 표지. 사진 아시아출판


모옌은 고향을 원망하는 마음을 예술혼으로 승화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이 곧 문학이라고 생각했던 은사 쉬화이중(徐懷中) 작가 덕분"이라고 했다. 결정적으로 "중편 '투명한 빨간 무'가 문단에서 인정을 받은 후 비로소 자유롭고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었다"고 답했다.

'투명한 빨간 무'는 1985년 소설이다. 모옌이 열두 살 때 건설 현장에서 돌을 부수고 풀무질을 하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근처 무밭에서 당근 한 뿌리를 뽑아 먹은 경험을 그렸다. 당근을 경작한 농부에게 붙잡힌 모옌은 크게 혼난다. 그는 "마오 주석의 초상화 앞에 꿇어앉아 '만 번 죽어도 싼 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구했고, 아버지가 흙이 묻은 낡은 신발로 내 머리통과 등짝을 때렸다" 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향에서의 경험을 직접 활용"한 이 소설은 결과적으로 모옌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2년 후 모옌은『홍까오량 가족』을 발표했고, 장이머우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 '붉은 수수밭'으로 1988년 베를린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모옌이 '중국 현대문학의 신성'이라는 명성을 얻은 것도 이때부터다. "한동안 고향을 억눌렀다"는 그의 고백은 자신의 작품 세계는 고향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뒤늦게 인정하게 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장이머우 감독의 1987년 작 영화 '붉은 수수밭'의 한 장면. 모옌의 소설 '홍까오량 가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중앙포토

"소설 갈망하지만 수필 편하게 느껴"


모옌 산문집의 국내 출간은 2012년『모두 변화한다』 이후 11년 만이다. 그의 많은 소설 작품이 여러 언어로 번역된 것에 비하면 그의 수필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하지만 모옌은 "내가 갈망하는 것은 소설이지만 편하게 느끼는 것은 수필"이라며 "수필은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 작업이며 수필을 쓸 때 더 자유롭다"고 했다.

모옌은 "소설은 사람들이 비극에 맞서 분투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소설은 당연히 독자를 위로해야 하지만 사람들 마음에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역할"이라고도 했다. "인간은 누구나 때때로 피할 수 없는 비극을 맞게 되지만 그에 맞서고 분투해야 한다"면서다. 실제로 그의 소설은 상당수가 비극으로 끝난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는 이유로 숱한 사람들이 처벌받았던 문화대혁명(1966~1976년)을 유년 시절 통과한 그가 비극을 증언하는 '리얼리스트'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본명 관모예(管謨業) 대신 '말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필명 모옌(莫言)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는 노벨상을 받은 2012년을 "지나친 주목을 받아 서민들의 삶에서 멀어졌던 때"로 기억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소설이 아닌 에세이와 희곡을 잇달아 발표한 데에도 이런 중압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이 흐려지면서 지금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이 그의 회고다. 그가 201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아시아에서는 수상자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역자 박재우 교수는 이번 산문집에 대해 "소설에서 보이지 않는 모옌의 인간적인 매력을 진솔하게 드러낸 수작"이라고 평했다. 소설 창작과 관련한 비화뿐 아니라 문화 예술 감상평, 여행기 등 다양한 주제를 망라한 59편의 수필을 통해 '과묵한 작가'로 알려진 모옌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뜻이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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