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금수저 첫 월급 비교해보니…서글픈 '부의 대물림'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을 나온 A씨(31)는 서른 살이 된 지난해 9급 공무원에 합격했다. 취업 준비 기간이 남들보다 긴 편이었지만, 집안의 경제적 지원 덕에 시험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는 “오랜 공시 생활을 계속하지 못하고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한 친구가 적지 않다”며 "본인이 원하던 직장이 아니라서 애사심도 떨어지고, 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가난한 집 자녀가 부잣집 자녀보다 좋은 일자리를 얻을 확률이 약 8%포인트 낮다는 분석이 나왔다. ‘부의 대물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데이터로 입증된 연구 결과다. 이른바 ‘금수저’와 ‘흙수저’는 출발선인 첫 월급에서부터 격차가 발생하고,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한국경제학회에 따르면 오태희 한국은행 과장과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의 흙수저 디스카운트 효과’ 논문에서 이와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를 비롯한 교육 수준과 성별 등 인구 사회적 요인을 통제한 상태에서 분석한 결과, 부모의 금융자산이 적으면 자녀의 일자리 수준이나 소득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녀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 자녀가 대기업ㆍ공공기관ㆍ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확률부터 차이가 컸다. 금융자산 규모가 하위 25%(1분위)인 부모의 자녀는 상위 25%(4분위)의 자녀보다 7.6%포인트 낮게 조사됐다. 금융자산 하위 25~50%(2분위) 집안의 자녀도 4분위보다 6.7%포인트 낮았다.
연구진은 “자녀가 직장 탐색 과정에서 직면하는 ‘유동성 제약’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청년이 첫 일자리를 구할 때 자신과 최대한 잘 맞는 업무, 자기 발전 가능성이 큰 ‘좋은 직장’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자리를 찾으려면 시간과 기회비용이 많이 든다. 이 시기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청년이라면 ‘불만족스럽지만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보다 더 나은 곳을 찾는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정연우 인크루트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이에 대해 “같은 취업준비생이라고 해도 부모의 재력에 따라 양극화가 심한 것이 현실”이라며 “부모에 손 벌릴 처지가 안돼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준생과 이런 걱정 없이 공부에만 집중하는 취준생은 최종 구직 결과에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 직장에서 첫 소득은 금융자산 1분위의 자녀가 4분위보다 10.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분위 자녀의 경우 5.3% 낮았다. 3분위 자녀는 오히려 최상위권의 자녀보다 첫 소득 수준이 1.9% 높았는데,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취업하고 나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 간의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점이다. 다른 조건이 같을 경우 직장 경력 1년 차(첫해를 0년 차로 봤을 때)일 때 부모 자산 1ㆍ2분위 자녀는 최상위권 자녀보다 각각 6.5%ㆍ4.4% 낮은 소득 수준을 기록했다. 그런데 5년 차에는 이 격차가 각각 12.8%ㆍ11.1%까지 증가했다. 부모의 재력이 성인 자녀의 노동시장 성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오태희 한은 과장은 "부모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과 더 맞는 일자리를 찾은 청년일수록 직장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내고, 능력을 높일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소득도 빠르게 늘릴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사회 초년생 대부분이 아직 모아둔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직장 초기 경력 개발까지 부모의 도움에 의존하는 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부모의 부동산 자산이 자녀의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부동산 자산은 현금화가 어렵지만, 금융자산은 바로 자녀 교육 등에 투자하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흙수저와 금수저 사이에 발생하는 불평등을 줄이려면 청년이 구직 활동을 할 시기에 맞춰 정부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태희 과장은 “정부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해 청년층 구직자의 신용 제약 완화 등을 통해 노동시장 진입 초기 단계에서 정책적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 “중소기업ㆍ비정규직 대기업ㆍ정규직으로의 진입을 원활하게 해 이직의 ‘임금 사다리 효과’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고용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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