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대 국회의원 전국 제1위 득표, 부의장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김삼웅 기자]
이승만이 하야한 다음날(4월 27일) 국회는 서민호 석방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틀 후 그는 대전형무소에서 석방되었다. 서울역 광장에는 500여 환영인파가 독재자와 싸우다 긴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민주투사를 뜨겁게 맞았다. 민주당 동지들도 많이 나왔다.
"우리 학생들의 그 많은 피의 댓가로 오늘의 이런 기쁜 해후를 갖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히고 숭고한 젊은이들의 피에 보답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큰 아들 원룡의 집에서 꿈에도 그리던 손자 손녀(治李·治晩)를 만나 그들 이름을 지어줄 때의 착잡했던 심경을 회상했다.
메디칼 센터에서 감옥에서부터 앓았던 탈장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일 때 이대통령 암살음모사건으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 중에 우의를 나눴던 김시현·유시태의 방문을 받았다. 동병상련의 선배들이었다.
국회에서 윤형남·정일형 의원이 중심이 되고 12명이 서명하여 이승만 정권 하에서 불법적으로 형사처벌된 서민호·김시현·유시태 등 6명을 사면복권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이를 위한 사면법 개정안을 제출한 윤형남 의원은 1인독재에 반항하다가 투옥된 정치인들을 복권시키는 것이 4.19혁명정신에 합치된다고 제안설명에서 강조했다.
전남의 유지들을 중심으로 '월파 동지회'가 구성되고, 서민호 복권운동이 전개되었다. 전주 시민 1,200여 명이 서명한 '복권 진정서'를 관계 당국에 제출하는 등 각계의 요청으로 허정 과도정부에서 복권을 단행하였다.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어머니 상을 옥중에서 당했으므로 묘소를 참례하고 광주·벌교·고흥 등지에서 출옥강연회를 가졌다.
정국은 그동안 허정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수립되고, 6월 15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7월 29일 민·참의원 총선거에 입박했다. 그는 건강을 추스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좀 더 요양을 하느냐 총선에 나가느냐의 고심이었다. 4월혁명으로 독재자가 쫓겨나고 과도기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이 시급한 과제였다. 그는 혁명정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원내진출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고향 유권자들의 요청을 뿌리치기도 쉽지 않았다.
민의원선거에 민주당에서는 그가 복권되기 전에 이미 내정자가 있어서 무소속으로 고흥을구에서 입후보하였다. 투표 결과 전국 제1위 득표로 당선되었다. 그간의 반독재 민주투쟁을 유권자들이 평가해 준 것이다. 민·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선출한 대통령은 민주당 구파출신 윤보선이 당선되었다. 국무총리가 실권을 갖게 된 내각책임제의 총리후보로 자신을 천거하는 의원들이 있었지만, 8년여의 정치적 공백으로 엄중한 시기에 막중한 책임을 맡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판단, 이를 사양하였다.
국무총리는 민주당 신파의 장면이 구파의 김도연과 경합 끝에 선출되었다. 그는 무소속으로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다. 국회의장은 민주당의 곽상훈, 또 한 명의 부의장은 같은 당 이영준의원이었다.
4월혁명 후 한국사회는 오랫 동안의 압제가 풀리면서 과도한 주장과 욕구가 분출했다. 혁명의 주체였던 학생들 중에는 당장 수용하기 어려운 정치적 이유를 들고 나오고, 각종 시위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정치인들은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침묵하거나 외면할 때 서민호가 나섰다. <학생들에게 고한다>는 논단의 뒷 부분이다.
나는 여기서 학생들에게 일절의 세간사에 눈을 감고 상아탑 속에 끝내 창백하게 칩거해 있을 것을 요망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학생들이 제시한 주장의 어느 조목이고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요 그 하나하나에 젊은 학생들의 우국충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남의 뒤에 서기를 또한 원치 않는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감히 권하노니 4월 의거에서 한국의 학생들은 조국의 장래를 위하여 1세기를 단축시켰다는 찬사를 아끼지 아니한 온 세계 인민들이 그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 감격적인 반독재 학생선언문의 정신을 상기하여 쇠말적인 사건에서 눈을 들어 좀 더 큰 것을 주시하면서 힘과 덕과 용기를 닦아 후일에 대비하기 위하여 되도록 초연히 학구속에 묻혀 연찬에 헌신함으로써 진실로 분노한 젊은이들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주석 1)
주석
1> 서민호, <학생들에게 고한다>, <동아일보>, 1960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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