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길을 만들고 싶어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이후남 2023. 1. 1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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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센터 나비 20년 돌아보는
'미디어 아트와 함께한...' 출간
"한국 작가들 세계적 수준
기업 등과 연결 장터 필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미디어 아트와 함께한 나의 20년』에 수록된 미디어 아트 작품 사진과 다중촬영한 모습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길을 만들고 싶어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아트센터 나비의 새로운 20년에 대해 묻자 노소영(62) 관장이 들려준 말이다. 최근 나온 그의 책 『미디어 아트와 함께한 나의 20년』(북코리아)은 아트센터 나비의 지난 20여년 이야기.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미디어 아트에 특화된 기관으로 2000년 출범한 이래, 디지털 시대의 기술과 예술의 접점에서 펼쳐온 다양한 도전과 실험이 담겼다.

자화자찬보다도 시행착오라고 할만한 경험을 곳곳에 적은 것이 눈에 띈다. 노 관장은 "그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며 "다음에 오는 사람들은 이런 실수를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특히 초반 10년은 국내에 관련 작가나 융복합 작업에 관심 있는 타분야 전문가가 많지 않은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혼자서 애타했는데 10년 정도 지나니까 세상이 변하더라"고 했다.

책표지


미디어 아트가 한결 친숙해진 요즘도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새롭게 다가온다. 반려견을 통해 외로움을 달랜 경험에서 출발해 여러 로봇을 만든 것을 비롯해 그야말로 다채로운 그간의 활동과 함께 여느 예술과 다른 미디어 아트의 특징도 드러난다. 노 관장은 "새로운 기술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키시고 있는지, 사람 사이의 관계·구조 등을 연구하고 작품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책에 쓴 표현을 빌리면 과거의 그는 "기술에 관해 무비판적인 수용자"였다. 이제는 "기술이 인간한테 양면적"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는 "무작정 기술을 쫓으면서 한편으로 전례없이 우울증이 많고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며 "기술이 발달할 수록 (스마트폰 등) 스크린에 우리가 매어버린다"고 했다. "AI(인공지능)가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인간의 거의 모든 선택을 AI에 의지할 경우 인간은 대체 뭘 위해 존재하는 지 등 근본적 질문도 있습니다. 미디어 아트 작가들은 미디어를 다루면서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보고 느끼며 경고도 하고, 문제 해소에 어떤 대안이 있을까 제시하기도 합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트센터 나비의 전신은 그의 시어머니 박계희 여사가 1980년대 중반에 만든 워커힐 미술관. 97년 박 여사가 별세하면서 그가 책임을 맡게 됐다. 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에 초점을 맞추게 된 데는 남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견도 컸다고 한다. 노 관장은 남편과 이혼소송에 대해 한껏 말을 아끼면서도 "상당히 창의적인 사람이었다"며 "미래에 대한 선견이랄까, 사람들이 멀티 미디어로 오감을 통해 어떻게 소통하는지, 예술가의 예민한 촉을 통해 소통의 가는 길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는 "한류 콘텐트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미디어 아트는 세계적 수준"이라며 "작가들 개인은 무척 잘하는데 산업화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에서 해마다 열리는 '허브 몬트리올' 같은 행사를 예로 들며 "우리도 기업과 작가를,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길을 만들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는 향후 하고 싶은 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새로운 철학을 만드는 것. 서구의 철학이 아니라 우리 시각으로 지금의 디지털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는 철학·공학 양쪽에서 국내 전문가들이 만나 논의를 펼치는 '동동마당'(East meets East, 노 관장에 따르면 한자로 憧憧은 '설렌다'는 의미이기도 하단다) 등의 모임으로 구체화되는 중이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 시간의 개념도 그렇고, 양자역학에 나오는 애매모호함 등도 우리 동양의 사고 체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다른 두 가지는 콘텐트를 포함해 미디어 아트 장터를 만드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구축한 네트워크 등을 통해 젊은 세대의 해외 진출을 돕는 것이다.

미래 얘기 끝에 그에게 시간여행의 주인공이 된다면 어떨지 물었다. "저는 제가 살았던 삶에 대해서 별로 후회가 없어요. 지금까지 했던 일을 잘하거나 항상 행복했던 건 아니지만 아마 똑같이 살 거 같아요. 20대 때 경제학자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는데 안 되길 잘했어요. 예술이 훨씬 재미있어요." 회귀물처럼 미래를 아는 채 과거로 간다면 어떨까. "재미없잖아요, 다 알게 되면. 젊었을 때는 알려고 안달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모르는 게 많다는 걸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나이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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