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지명과 1순위가 만나면…문동주-김서현, 한화의 내일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지난 3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내리 최하위로 처졌다. 이 사이 승률은 0.339(141승17무274패). 일주일 6경기를 치르면 2게임 정도를 간신히 이긴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한화. 그러나 미래까지 암울한 것은 아니다. 최하위 성적은 역설적으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매년 수준급 유망주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렇게 엄선한 인재 중의 인재가 바로 문동주(20)와 김서현(19)이다.
2003년생 문동주와 2004년생 김서현은 고교야구 무대를 뜨겁게 달군 오른손 파이어볼러들이다. 일찍이 최고시속 150㎞가 넘는 빠른 공을 던지면서 프로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샀고, 1년 차이를 두고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5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입단 계약금과 함께였다.
둘이 합쳐 10억 원이라는 가치 투자가 들어간 문동주와 김서현을 최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만났다. 한 살 차이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인터뷰 내내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위하는 장면은 ‘청춘(靑春)’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먼저 인터뷰실로 들어온 이는 김서현이었다. 3년 동안 입은 서울고 유니폼 대신 구단 마크가 박힌 연습복을 걸치고 나타난 김서현은 “온종일 운동만 한다고 보면 된다. 러닝부터 캐치볼, 웨이트트레이닝, 불펜 투구까지 마치고 나면 하루가 금방 끝난다”고 근황을 말했다. 이어 “쉴 때는 동기들과 게임을 한다. 가끔 대전 시내로 나가기도 하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곤 한다”고 웃었다.
뒤이어 들어온 문동주에게선 1년 선배의 여유가 느껴졌다. 문동주는 “본가는 광주지만, 따로 집을 구했다. 이제는 대전 생활이 더 재밌다”고 말했다.
문동주와 김서현은 각각 광주진흥고와 서울고 시절부터 야구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둘은 일찌감치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문동주는 “자양중 투수 중에서 공이 빠르고 제구가 좋다는 선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역이 달라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소문이 광주까지 났다”고 회상했다. 옆에서 이를 듣던 김서현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이었다. 당시 선배들이 어떤 선수의 영상을 찾아서 보더라. 나도 옆에서 봤는데 스냅백을 쓰고 멋지게 공을 던지는 투수가 있었다. (문)동주 형이었다”고 떠올렸다.
이렇게 만난 둘은 1년 터울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문동주는 2022년도 KBO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에서 한화의 선택을 받았고, 김서현은 전면 드래프트로 진행된 이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이름이 불렸다.
김서현은 “지명 다음날 동주 형이 내 SNS로 찾아와서 직접 댓글을 달아줬다. 정확히는 박수 이모티콘으로 기억한다. 그제야 ‘아, 내가 드디어 형과 함께 뛰게 됐구나’라고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은 내가 1순위가 될 줄 몰랐다”고 하자 문동주는 “얘가 또 거짓말을 한다”고 장난기 섞인 핀잔을 놓았다.
둘에게 거는 한화의 기대는 5억 원이라는 입단 계약금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학창시절 보여준 잠재력은 물론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내다보고 한화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적지 않은 금액은 어떻게 쓰였을까. 문동주는 대전 전셋집 계약금으로 이를 활용했고, 당분간 숙소 생활을 하는 김서현은 이를 부모님에게 선물했다.
문동주와 김서현에겐 비슷한 느낌의 수식어가 각각 따라붙는다. 한화의 마지막 1차지명 그리고 전국 수석이다. 이 부담감을 이겨내야 프로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문동주는 “어쩔 수 없는 위치인 것 같다. 아무래도 다른 선수들보다 주목도가 높은 것이 현실이다”면서 “그래도 이 자리에서 잘 해야 하는 것이 또 내 임무이기도 하다. 사실 지난해에는 부담감이 조금 있었는데 갈수록 야구가 재밌어지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영건 듀오가 꿈꾸는 그림은 결국 하나다. 선발투수로 나온 문동주가 확실하게 경기를 지배하고, 마무리로 투입되는 김서현이 마침표를 찍는 승리의 장면이다.
문동주는 “나와 (김)서현이 모두 공은 빠른 편이기는 하지만 유형은 다르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면서 “어차피 서현이는 프로에서도 잘할 것이다. 결국 내가 잘해야 우리가 원하는 그림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겸손을 보였다.
이를 곁에서 듣던 김서현은 “불펜투수로 뛰고 싶다는 말한 최근 인터뷰를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님께서도 보셨다고 들었다. 다행히 감독님께서도 나를 구원투수로 준비시키려고 하시는 것 같다. 만약 동주 형이 힘들어하면 내가 빨리 올라가겠다”고 동생다운 패기를 뽐냈다.
대전=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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