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반대했지만, 이제는 찬성"
"전쟁 전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반대했지만, 이젠 나토 가입이 적절해졌다."
미국의 외교 원로이자 국제정치학자인 헨리 키신저(99) 전 미 국무장관이 최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한 자신의 과거 입장을 번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와 대화는 계속 필요하지만,우크라이나의 중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키신저는 1970년대 미 국무장관으로 일하며 미·중 수교를 성사시키고, 소련과의 냉전을 종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외교가의 '산 증인'으로 평가받는다.
17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키신저는 이날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 화상으로 참석해 이같은 발언을 했다. 그는 "전쟁 전에 나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했다"면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과정들이 시작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중립에 대한 생각은 (전쟁이 계속되는) 지금 상황에서 더는 의미가 없다"며 "이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적절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9월 30일 나토에 신속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유럽 주요 국가들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우크라이나를 가입시켜 러시아를 자극하기보다 현상 유지가 낫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천연가스의 약 4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유럽 국가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문가들의 시각도 바뀌고 있다. 옛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통합하려고 했던 미국의 시도에 대해 "신중하지 못했다"고 주장해오던 현실주의자 키신저의 입장 변화를 두고는 "의미심장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다만 키신저는 신중론도 함께 폈다. 이번 포럼에서도 "러시아를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며 "러시아가 국제 체제에 재합류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대한 핵무장 국가의 불안정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며 "전쟁 중에도 러시아와의 대화 유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침공 이후 점령한 영토를 우크라이나가 모두 되찾을 경우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기존 주장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가 개전 직전 이상의 영토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지난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크림 반도에 대해선 러시아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키신저는 이번 포럼에서 갈수록 갈등이 깊어지는 미·중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제한적이고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양국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결전이 임박한 듯한 행동을 피하고 위협적인 언사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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