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만에 강백호 역할, 더 없이 영광이었다"

이선필 2023. 1. 1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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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성우 강수진

[이선필, 이정민 기자]

강백호를 처음 연기할 때 30대였던 그가 50대 후반이 되어 다시 강백호가 되었다. 26년 만에 처음으로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참여한 극장판 <슬램덩크>의 흥행세에 성우 강수진의 몫도 분명 있어 보였다. 지난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몇몇 대형 상업영화를 제치고 <아바타: 물의 길>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가운데 강수진 성우를 13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다.

1992년 한국에 <주간 소년챔프> 연재로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원작 만화는 말 그대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길거리 농구 활성화, 농구대잔치의 열기.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가수 이승환의 노래 '덩크슛'은 모두 이 슬램덩크 열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에 일본에서 개봉한 걸 보고 한국에도 개봉할 것을 이미 예상했는데 다시 제가 강백호 역할을 하게 되어 가슴 벅찼다"며 강수진 성우는 소회부터 밝혔다.

꾹꾹 눌러담아야 했던 강백호의 에너지
 
▲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강수진 성우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강백호 역을 맡은 강수진 성우가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꿈과 열정, 멈추지 않는 도전을 그린 영화다.
ⓒ 이정민
 
35년 경력의 베테랑 강수진 성우는 26년 전 대원 비디오 버전에서 강백호 더빙을 맡은 바 있다. 극장판 개봉에 모든 성우들이 새롭게 구성됐는데, 유일하게 강수진 성우만이 같은 역할을 다시 맡게 된 셈.

"제가 참여했던 비디오 버전이 나중에 케이블로 방송되긴 했지만 이후 공중파 리메이크 버전에선 다른 성우들이 참여했고, 게임 버전에선 또다른 성우들이 투입됐었다. 매체별로 다양한 성우들이 <슬램덩크>에 참여한 거지. 한국에 극장판이 수입된다는 소식과 함께 일본 성우진도 전격 교체됐다는 뉴스를 봐서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행운이 겹친 것 같다. 오디션을 거쳤거든. 저 외에 서 너 명이 강백호 역할로 오디션을 본 걸로 알고 있다."

<란마 1/2>를 시작으로 우리에겐 <원피스> <이누야샤> <개구리 중사 케로로> 등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타이타닉>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목소리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슬램덩크>를 가장 힘들었던 작품으로 꼽곤 했다. 열악했던 당시 녹음 환경에 더해 보다 목소리를 거칠고 굵게 만들어 연기해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 힘겹게 했는데 작품 자체가 재밌어서 견디며 했다. 지금 영화를 보신 관객들의 주 연령층이 <슬램덩크>와 함께 소년기, 청소년기를 보내신 30, 40대 분들이다. 특히 청소년기 시절은 생생하게 남아 그 사람의 기호나 성향에 상당한 영향을 주잖나. 그래서 지금 극장판도 흥행하는 것 같다."

특히 이번 극장판은 강백호가 중심이던 서사와 다르게 송태섭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강수진 성우 또한 이점을 간파했다. 그는 "이노우에 다케히고 감독님이 직접 한국어 더빙에 의견을 주진 않았지만 일본판을 봤을 때 기존과 달리 자연스러움과 리얼리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느꼈다"며 "한국판 더빙 연기에도 그 부분을 신경 써서 작업했다"고 말했다.

"다만 강백호만큼은 해석을 좀 다르게 했다. 자연스러움과 리얼리티도 좋지만, 강백호만큼은 그 단순하고 열정적인 성격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 지점에서 합의를 보고 연기했다. 개인적으론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진행한 건 재밌는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연기하는 성우입장에선 사실 송태섭이 주인공이니 덜 힘들겠구나 싶기도 했지(웃음). 근데 막상 해보니까 분량은 적어도 만만치 않더라. 오히려 적은 분량에서 강백호의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야 했다.

캐릭터의 감정선이나 정서적 에너지는 비디오판이나 극장판이나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전자에선 특유의 코믹함과 과장됨이 있었고 후자는 그 에너지를 드러내지 않고 내면화해야 했다. 관객분들이 공감하려면 내재된 에너지의 총량도 비디오판과 같아야 했다. 이걸 연기적으로 풀기가 참 어려웠다."

지난해 11월 말 경 작품에 참여하기까지 약 20일 정도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고 한다. 강수진 성우는 "다시금 강백호와 혼연일체가 돼 체화시키는 게 중요했다. 이번에 비교적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서 연구 과정이 있었는데 막상 결과물을 보니 좀 더 깊이 연기할 걸 하는 아쉬움이 좀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더빙은 성우들 간 호흡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화면 속 캐릭터와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단순히 입모양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살아서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연기한다. 결국 누가 더 몰입하느냐 차이다. 북산 팀 멤버들을 연기한 다른 성우들이 친한 후배들이고 동료다. 그들의 특성을 잘 알기에 연기적 특징을 고려하며 준비했다. 신별로 다른 성우가 녹음해 놓은 걸 들어보고 감정선을 잡아기기도 했다."

강수진 성우는 <슬램덩크>에서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로 강백호를 꼽았다. "제가 강백호라서가 아니라 정말 그를 좋아한다"며 웃으며 그가 이유를 전했다.

"북산 팀 인원을 보면 각자 개인 서사와 역사가 있잖나. 결국 <슬램덩크>는 강백호나 그 개개인의 성장기라고 생각한다. 농구라는 스포츠를 매개로 한 성장기지. 북산이 만나는 상대팀은 마치 벽처럼 단단하고 강하다. 그 미션을 극복하면서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거라 많은 분들이 지금도 사랑해주시는 것 같다. 강백호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성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선수로서나 인간으로서나. 농구를 접하기 전 그가 얼마나 개차반이었나(웃음)."

"성우는 작품에 마지막 점 찍는 역할" 
 
▲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강수진 성우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강백호 역을 맡은 강수진 성우가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꿈과 열정, 멈추지 않는 도전을 그린 영화다.
ⓒ 이정민
 
수많은 작품에 참여하며, 그는 여러 부침을 겪었다.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성우 중 한 사람으로 그는 누구보다 동료와 후진 양성에도 진심이다. 실제로 아카데미를 차리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그런 때에도 묵묵히 연기하며 견딜 수 있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단순히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뛰어넘어 게임과 콘텐츠 해설 등 매체 다변화로 성우들의 활약 또한 다방면으로 넓어졌다. 베테랑 성우 입장에선 이런 환경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있을까. 그는 "성우의 일이 양적으로 줄진 않았는데 그 가치는 저평가되고 있다"고 짚었다.

"성우들이 느끼는 딜레마다. 1980, 90년 대엔 공중파 중심의 활동이라 나름 인지도도 있었고, 존재를 알릴 수가 있었다. 근데 지금은 성우의 능력이나 희소성에 비해 너무 기능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얼굴이 안 보이는 것뿐이지 연기나 성우 역할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거든.

더빙이든 어떤 콘텐츠든 성우가 참여하는 작업은 순서로 보면 후반 작업에 해당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업에 투자를 많이 안 하는 편인 것같다. 앞 과정에서 돈을 다 써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전 오히려 이 작업이 화룡점정이라고 생각한다. 순서적으로 가장 뒤지만, 마지막 점을 찍는 거기에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강수진 성우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강백호 역을 맡은 강수진 성우가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꿈과 열정, 멈추지 않는 도전을 그린 영화다.
ⓒ 이정민
 
이어 그는 구조적 문제도 지적했다. "성우를 자꾸 기능에 치우친 연기로 생각하고, 이미 기능적으로 완성된 사람을 뽑곤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성우의 개성과 창의성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성우 양성 시스템을 보면 기능적인 면에 치우쳐 있다. 근데 정말로 목소리든 뭐든 개성 있는 성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양한 매체에서 연기할 수 있는 게 중요하기에 단순히 가능 말고 개성이 필요하다. 공감력이 뛰어난 성우가 좋은 성우라고 생각한다. 판타지든 리얼리티 드라마든. 특히 성우 활동 영역이 애니메이션일 때가 많은데 애니메이션은 소위 판타지잖나. 비현실적인 감정을 패턴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질은 공감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 캐릭터나 이야기의 진실성을 잘 전달할 수가 있다."

틈틈이 연극 무대에 오르며 연기력을 다져온 그는 언제 어떤 무대에서든 연기할 수 있도록 다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부캐(본업과 또다른 정체성으로 활동하는)를 만들어서라도 해야 하나 싶다"며 제법 유쾌하게 자신의 방향성을 드러냈다. "구체적 목표나 뚜렷한 계획을 세우기 보단 하루하루 충실히 살다 보면 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다"고 했다. <슬램덩크>로 시작한 그의 2023년을 충분히 기대해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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