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조사] 야권수사 단골메뉴 ‘직권남용’…“통치영역 좁혀” VS “대통령 권한 견제”
형법 제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 혐의는 검찰의 야권수사와 관련해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단골 메뉴’가 됐다.
전 정부 정책추진 과정의 위법성을 따지는 수사에는 ‘전가의 보도’처럼 직권남용 혐의가 활용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정부 당시 검찰이 몰고 온 변화다.
현 정부에서도 이 같은 기류는 이어지고 있다. 검찰이 수사를 진행 중인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은 모두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북한군에게 피살된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사건을 은폐할 목적으로 국정원과 국방부 관련 첩보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 등을 받는다.
그러나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는 데 있어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직권남용 혐의가 자칫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국민일보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법학 교수, 정치학 교수, 정치평론가·여론조사 전문가 등 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직권남용 혐의가 정치보복의 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교수·전문가 16명은 ‘매우 그렇다’고 답했고, ‘일부 사례에서 그런 측면도 있다’고 답한 사람은 24명이었다.
반면,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답변은 10명으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일보 설문조사 전 진행된 사전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출된 권력이 누릴 수 있는 통치의 특권이라는 것이 있다”며 “정치의 영역·정무적 판단의 영역이 그것인데, 이마저도 기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게 문재인정부 때 윤석열검찰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통치의 영역이 끊임없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윤석열정부도 여기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이 임기 내내 회사원 같이 주어진 최소한의 일만 하고 가는 것, 이런 경향을 좋은 정치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직권남용 혐의의 적용 범위와 빈도가 넓고 잦아질수록, 그 조항의 판단대상으로 삼는 통치의 영역은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그 결과 퇴임 후 직권남용 혐의에 의한 처벌 가능성을 우려한 나머지 ‘아무 일도 안 하는 대통령’이나 ‘아무 일도 안 하는 정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직권남용 혐의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비판도 거세다.
검찰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직권남용 혐의는 대통령이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절대로 직권을 남용해선 안 될 최소한의 부분에만 적용해야 한다”며 “적용 범위와 조건을 매우 구체적이고 명백하게 만들어서 조항이 아무런 논란이 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예를 들어,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 자신의 재산을 불린다든지 하는 그런 범죄 외에는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권남용 조항 때문에 공무원 조직이 ‘복지부동’이 돼 버렸다는 지적도 있었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권남용 혐의로 걸면 누구든지 처벌할 수 있게 돼 버렸다”면서 “공무원이 제대로 일했다가는 직권남용 혐의에 걸려버릴 수도 있으니, 공무원 조직은 아무도 나서서 일하지 않는 곳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직권남용 혐의의 순기능에 주목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과 정권의 권한이 매우 막강한 상황에서 직권남용 혐의의 존재 자체가 견제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직권남용 혐의를 어떻게 바꾸냐가 문제가 아니라,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라며 “직권남용 혐의의 기준만 확실히 한다면 대통령이 권한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직권남용 혐의가 악용될 소지도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처럼 가진 권력을 남용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곳에서는 경각심과 주의를 준다는 측면에서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당팀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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