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⑰] 샌프란시스코의 추억
'트윈 픽스' 전망대에 올라서자 한눈에 들어오는 샌프란시스코 전경이 가슴을 청량하게 열어준다. 걸어서 금문교를 건너다 소나기에 옷이 흠뻑 젖었지만,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행복을 실어다 주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접어들자 '샌프란시스코','호텔 캘리포니아'와 같은 팝송을 들려주어 잔잔한 바다처럼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편으로는 어떤 도시일까? 궁금하여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트윈 픽스' 전망대로 갔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시가지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구름 낀 날씨이기는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만을 가로질러 놓인 금문교를 비롯하여 시내와 바다가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아담하게 보이는 항구와 도시는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조용하고 평화스럽다. 도로에는 전차와 자동차가 사이좋게 다니고, 성 소수자들의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도 보인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와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가이드는 부둣가 '패리 빌딩' 상가 안에 UC버클리와 스탠퍼드대학교 출신 학생들이 창업하여 유명해진 '블루보틀' 본점의 카푸치노가 부드럽고 맛있다고 알려준다. 급히 찾아갔지만 이미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시간이 촉박하여 다른 곳은 못가더라고 커피 맛은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예상보다는 빨리 나왔다. 한 모금 맛보는 순간 이때까지 마셨던 어떤 커피보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워 혀를 놀라게 한다. 오랫동안 음미하기 위해 조금씩 여유롭게 마신다. 아내와 둘이서 한 잔만 시킨 것이 후회스럽다. 명문대학 출신들이 개발한 것이라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도 벌써 들어왔다고 하니 귀국하면 꼭 찾아가 봐야겠다.
'피어39' 부둣가에는 바다사자가 십여 마리 씩 무리 지어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다. 유람선이 지나다니거나 관광객이 사진 촬영하느라 시끄러워도 전혀 개의치 않고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평화롭게 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선착장 부근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많은 관광객이 부둣가에서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도 그 흔한 종이컵 하나도 바다에 떠다니지 않는다.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통이나 어구들로 지저분한 우리의 항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민의식과 문화 수준이 좀 더 높아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1시간 코스로 금문교 아래를 돌아왔다. 금문교 쪽 바다로 나갈수록 바람이 강해 사진을 찍으려고 들고 있는 핸드폰이 날아갈 것 같고 모자를 쓸 수도 없다. 태평양으로 트인 길목이라 그런 모양이다. 수면에서 다리까지는 워낙 높아 지나가는 사람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죽음의 수용소라 불리는 '앨커트래즈'라는 감옥 섬 옆을 지났다. 악명높은 흉악범을 수용했던 교도소로써 재소자의 후생복지와 생존 보장이 최악이었다. 46년간 운영하는 동안 5천여 명이 갇혀 있었지만 섬 주변에 회오리 해류가 흐르고, 수십 미터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 아니라, 상어가 우글거려 한 명도 탈출한 사례가 없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피아 두목인 '알 카포네'가 수용된 감옥이라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감옥섬의 시설은 폐쇄된 이후 보수하지 않았던지 창문도 없이 골조만 남아 폐허가 된 공장처럼 보였다. 19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지금은 유람선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죄수들은 시가지가 훤히 보이고,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을까? 죄에 대한 당연한 벌이겠지만 화려한 도시가 지척에 있음에도 외부와 단절된 채 지내야 했던 것이 최고의 고역이 아니었을까? 이런 이유로 죽음의 수용소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문교는 골든게이트 해협을 가로질러 맞은편 마린 카운티를 연결하는 세계 최초의 현수교다. Golden Gate라는 명칭은 서부 개척 당시 골드러시 시대에 샌프란시스코 만을 부르던 이름이다. 1937년 5월에 개통하였으며, 다리의 길이는 약 2.8km로 걸어서 건너면 40~50분 정도 걸린다.
금문교 입구로 가서 기념촬영을 했다. 날씨는 흐리지만, 주홍색의 교각을 제대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음 코스인 다리 건너 '소살리토' 예술인마을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금문교 건너 주차장으로 먼저 보내고 습기를 흠뻑 머금은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걸었다. 감옥섬도 보이고 바다를 따라 기다랗게 이어진 샌프란시스코 아름다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리를 걸어서 가다니 감회가 새롭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다리 중간쯤 지나자 점점 굵어진다. 걸음도 덩달아 빨라진다. 젊은이들은 뛰기 시작한다. 다행히 세찬 비바람이 뒤에서 불어 저절로 뛰어가게 도와준다. 무거운 카메라가 비에 젖을까 가슴에 움켜 안고 달렸다. 비는 점점 굵어져 소나기로 변했다.
비를 덜 맞으려면 빨리 뛰어갈 수밖에 없다. 건너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버스에 올라가자 모두 물에 빠진 생쥐 꼴이지만 얼굴은 환한 표정이다. 금문교를 건너면서 좀 더 여유를 갖고 시가지나 현수교의 아름다운 모습을 둘러보면서 건너야 하는데 비바람으로 인해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여행객 대부분은 금문교 입구에 와서 기념사진만 촬영하고 돌아가거나 아니면 차를 타고 건넌다. 가이드의 "금문교를 걸어서 건너가 보겠느냐?"는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 잠깐 후회되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 중에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가 생겼다. 가을 날씨처럼 선선하여 오래지 않아 축축하던 옷이 다 마른다.
비를 맞게 한 것이 미안했던지 가이드는 저녁 식사 때 귀한 술을 선물로 내놓아 오랜만에 일행들과 반주를 곁들여 여유롭게 여행담을 나누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만 주위에 형성된 시가지는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에 흠뻑 빠진 듯하다. 달콤한 커피 한잔에 모든 것을 얻은 듯 행복했으며, 비를 맞으며 금문교를 달려본 흔치 않은 추억을 가져 뿌듯했다. 즐겁고 아름다웠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여행은 이런 추억을 간직할 수 있어 또다시 짐을 꾸리게 하는가 보다.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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