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경제격변기]③"中, 지난 20년처럼 도움된 시대 지나..기술격차 키워야"
'탈(脫)중국'이 우리 경제의 핵심 과제가 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새해 벽두부터 신년사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국 경제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가 이례적으로 탈중국을 언급한 것은 그만큼 중국발 리스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은 지난 20여년간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었으나 지속된 무역수지 적자와 미·중 갈등 여파에 어느덧 '약점'으로 바뀌어 탈출 대상으로 전락했다.
'수출 효자' 중국…갈수록 적자만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다. 지난해 기준 수출의 22.8%, 수입의 21.1%를 중국이 차지했다. 단일 국가로 따지면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교역 규모가 크다. 중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마찬가지다. 중국 관세청인 해관총서의 수출입상품 국가 총액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대(對)한국 수출입액은 총 3623억달러(약 448조원)로 일본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간 양국의 무역 규모는 무려 47배 늘었고, 한국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6배 확대됐다.
하지만 덩치만 커졌을 뿐 우리 교역 조건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대중국 수출은 지난해 6월 이후 7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성장 중이다. 수출 감소율도 6월 -0.8%, 7월 -2.7%, 8월 -5.5%, 9월 -6.7%, 10월 -15.7%, 11월 -25.5%, 12월 -27.1%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흑자국 순위에서도 중국은 22위에 그쳤다. 한때는 무역 흑자의 약 80%가 중국과의 교역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베트남, 홍콩, 인도, 싱가포르 등이 대체하는 중이다.
중국에 특히 취약한 韓 수입공급망
이처럼 대중국 무역수지가 계속 악화하는 것은 수출은 줄어드는 반면, 수입 의존도는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부족해 주요 원자재·자본재의 수입비중이 높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다. 중국이 단순조립·가공 역할에서 중간재 제조강국으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수입공급망이 중국에 집중된 결과다. 중국은 제조기술을 점차 고도화하는 가운데 희토류, 리튬, 코발트 등 광물자원 확보를 크게 늘렸고, 현재 원자재·반도체·화공품 등의 품목에서 우리나라에 가지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한은이 지난해 우리 경제의 수입공급망 취약성을 분석한 결과, 전체 수입품목 5381개 중 2144개(39.8%)가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중 광산품·섬유·사료 등 원자재 품목의 취약성이 컸는데 이들은 대부분 중국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은 것들이다. 글로벌 취약품목의 주요국별 수입 비중을 살펴보면 중국이 20.5%에 달했고 독일이 9.2%, 미국이 7.9% 등이었다. 특히 구리, 알루미늄, 아연 등 주요 광물은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비중이 평균 67%로 조사됐다. 이 품목들은 반도체, 이차전지 등 우리 주요 산업에 핵심 소재다.
중국 제재 본격화하면 韓 경제 '휘청'
이처럼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커지면서 중국 내부 사정이나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도 확대됐다. 한은은 "중국의 영향력이 다른 국가들을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 중국 정부의 봉쇄조치 등과 같이 중국 내 공급망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네트워크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주요국의 품목당 평균 교역국 수를 보면 중국 97개국, 미국 72개국, 독일 75개국이지만 한국 24개국에 불과해 취약성이 크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공급망 체계가 무너지고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중국은 첨단산업에 필요한 희토류, 희귀금속, 에너지자원 등 수출관리품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쉽지 않다. 국제관계 전문가인 스인홍 베이징 인민대 국제학과 교수는 최근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통해 "한국 경제가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한국인이 (중국의 제재에) 표적이 되기 더 쉽다"고 말했다.
생산기지 분산하고 中 기술격차 늘려야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우리가 강점을 가졌던 조선이나 철강은 이미 중국이 가져갔고 전자 등 부문도 뺏기고 있는 상태여서 우리 경제 전망이 밝지 않다"며 "바이오, 배터리, 군수산업 등이 남았는데 신산업에서의 기술력을 빨리 고도화시켜 중국과의 차이를 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대학 등 교육 체제를 인력 양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개편하고 정부도 기업 기술력 향상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국제금융학회장을 지낸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지난 20년처럼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시대는 아니다"며 "미·중 대립으로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더 분산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중국 수입 의존도 관련해서도 "중국은 인건비, 교통비가 싸기 때문에 원가 절감 효과가 크지만 '요소수 대란'에서 경험했듯 단순히 원가만 가지고 수입처를 정해선 안된다"며 "너무 중국에 의존하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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